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4)
사람들은 변화를 망설인다. 나도 그렇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는 것은 참 낯선 일이다. 남자들한테서는 가장 큰 이별이 군대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가끔 또 다시 102보충대에 가는 꿈을 꾸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나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곳이라니.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즐기는 사람도 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마도 한비야씨인듯 하다. 중국견문록을 읽고 받은 감동은 꽤나 오래갔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그것도 적잖은 나이를 먹고. 지금도 여전히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부러움을, 한편으로는 위안을 얻는다. 그래 그건 가족이 없을 때에나 하는 거야.
사람들은 변화를 망설인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이야기 한다.
두려움. 귀신의 집은 놀래키는 녀석들도 무섭지만, 그 세트장 자체로도 두렵다. 그리고 굳이 그러한 변화된 곳을 즐겨하고 싶지 않다. 즐기는 사람은? 함께 가는 사람의 두려움을 즐거움으로 삼던지, 아니면 그 자체를 즐기던지.
불편함.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불편함을 만드는 게 아닐까? 마음을 졸여야 하는 귀신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하지만 어디서 귀신이 나오는지, 빨간 불빛과 어둠에 익숙해 지면 그 불편함은 점점 사그러진다. (뭐, 그렇다고 다시 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슬픔. 무언가 익숙했던 것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변화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변화가 오기 때문에 얻는 이익은 추상적이라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잃게 되는 것은 구체적이기 때문에 그 크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으려면, 변화로 오는 손해보다 그 이익을 크게 느끼면 된다. 아니면 그런 경험을 계속 쌓아 나가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면 된다. 한비야씨 같은 경우는 본인이 선택한 변화에서 얻은 경험을 극대화함으로써 다음 변화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고나 할까?
결국 내가 그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변화를 두려워 해야 하는지, 아닌지로 결정되는 듯 하다. 다이어트를 고민하면서 날씬해진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편한지, 아니면 앞으로 먹지 못할 치킨이나 피자를 그리워해야 할 지는 결국 자신의 몫이 아니던가.
또 하나. 때로는 나의 변화가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을까? 혹은 나의 삶에 무슨 이익이 있을까 걱정하지만. 그럴 땐 어쩌면 작은 변화 하나가 쌓이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말을 곱씹어야 한다.
나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강물에 돌 하나를 던져 많은 잔물결을 일으킬 수는 있다. - 마더 테레사
그 분만큼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너무나 위대한 일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다음 이야기는, https://brunch.co.kr/@2edu4all/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