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마라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5)

by 오랜벗

잘한다는 추임새에 빠져 이것저것 다 도맡아 했던 초년생이었던 나는 꽤나 일 잘하는 직장동료였고 후배였다. 그렇게 배워나간 일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몇 년이 지나 후배들이 들어오고, 서투른 그들을 도와준다고 이 일 저 일 대신 해 주기도 했다. (가르치는 것보다 해주는 게 빨라서 그랬더니 나중에 큰 코 다치더라) 일은 일대로 밀려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즐겁기도 했다. 마치 회사가 내가 아니면 안 돌아가는 것 마냥 느끼기도 했고.


막상 그 회사를 떠났어도 변함없이 돌아가는게 무언지 허무했다. 내가 무척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결국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많았던 것이다. 실은 그게 맞는 거지. 나도 다른 회사에서 누군가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테니.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을 때가 있었다. 그 때가 바로 '우리 회사는 니가 아니면 안돌아가. 너 없으면 어찌되었을까?'를 곧이 곧대로 믿었을 때였다. 회사를 떠나기 전 내 빈자리의 크기를 느껴보라고 의기양양했던 기대와는 달리 잘 돌아가고 있는 그 회사를 보면서 자존감이 참 많이도 떨어졌었다. 막상 잘 안돌아가는 회사를 보면 의기양양하기도 하다가, 내 탓때문인지 걱정도 하게 되더라. 이래 저래 모든 것을 다 내 탓으로 느끼는 이 오지랖.


거기서 벗어나려면 결국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일도 나누고, 책임도 나눈다. 필요할 때는 도움도 청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없고를 결정하는 것을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라 한다. 이게 객관적인게 아니라 주관적인 믿음에 따른 다는 것이 함정. 결국 마음 먹기에 따라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제의 힘을 내부에서 찾는 게 외부에서 찾는 것보다 유리하다. 왜냐하면 외부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부는 내가 고칠수 있으니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남탓으로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사람)


그래도 이 부분이 그나마 내가 가장 잘하고 있는 부분인 듯 하다. 내가 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깨끗하게 포기해 버리곤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잘하자.' 이게 나의 가장 긍정적인 면이지. 이걸로 그 일이 해결되거나, 통제하고 싶은 당신이 감화되면 땡큐이고, 그렇지 않으면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사랑만큼은 쉽게 포기가 안되더라. 이런.


다음 이야기는, https://brunch.co.kr/@2edu4all/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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