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O26

제 1-3 장 나 : 이거 뭔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

by 올드한

보여줘서는 안되는 것을 보여줬다는 듯 고속도로는 황급히 그 첫번째 터널을 마련했다.

‘이건 뭐랄까... 뭔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네’ 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짤 때 나도 좀 끼워주면 안될까. 맨날 이런 식일까 어째.


누가 얼마만한 스케일로 어떤 것을 공모했건 좀 색다른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어디에도 가슴을 활짝 열어 젖히고 만끽하는 편이 아니니까.

그것이 ‘유쾌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 이라도 이미 익숙한 것이라면 이내 시시해 져서 가슴을 닫은 채 아무 것도 나를 관통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 것도 내 실체를 맛보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격체이건 비인격체이건.


‘아니에요. 오늘은 전에 없이 뭔가 아주 흥미로운 일이 있을 거예요’ 라는 예감이 아까부터 발 밑을 달구고 있었다. 흔치 않게 타는 후륜구동 차의 뒷바퀴 진동이 만들어 내는 이질감 때문일까...


내가 지금 나와 관련성이 있는 스토리 안에 있는 중인가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무관한 것 같은데.

일본 출장은 국내 이웃 도시에 가는 것 처럼 거리낄 것이 없었어.




뒷자석 윈도우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 조정은 운전석에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저기 기사님, 제 쪽 윈도우 좀 내리고 싶어요” 달을 똑바로 보고 싶은 마음에

한 부탁이었다. 나라마다 제 각각 다른 형태의 달을 보유할 수 있지 않은가.

고유한 모양의 국기가 있듯이.


“안됩니다. 특히 고속으로 달리고 있을 때는요”

타당한 논리를 갖춘 멘트였다.

“흠” 택시 기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나를 실어 나르려고 계획했던지

짧은 신음을 흘리고 다음 말을 찾다가 포기하고 계속 해오던 침묵을

그대로 유지했다. 법률을 따진 후 외국인에게 그런걸 설명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기사님, 오늘은 달이 좀 이상하게 보여요”


기사가 침묵을 깨고 마침내 내게 들려준 건, 아니 내가 들어 버린건

“무슨 말을 하는지 당췌 모르겠네”라는 혼잣말이었다.


내 서툰 일본어가 문장을 구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완성된 내 문장의 의도가 ‘이 기회에 당신을 생생한 일본어 회화 교재로 채택한 다음 아무 말이나 주고 받기’라고 추측하고 무시해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뜸을 들여 “죄송합니다” 라고 하며 택시기사의 다음 말을 원했지만 돌아온 건 역시 무음.

말을 교환한다는 것이 이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라면 하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음표들이 아래위로 널뛰기를 하고 있었지만.


도심의 불빛이 마지막 하나까지 완전히 사라지고도 인적 없는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더 달린 후 마침내 멀리 호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도심 통근권은 몇 십분 전에 이미 벗어났다.





호텔은 고향에 있는 어느 종합병원 건물과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과의 거리가 택시의 요금미터기에 맞춰 착착 좁혀질 때 택시가 건물에 접근한다기보다 건물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착각일까.

‘자 이제 우리 재미있는 일 한번 만들어 볼까’하며 의자를 당겨 앉는 취조실의 고문을 즐기는 형사처럼.


다 왔으니 운전에 집중하던 신경을 좀 놓은 걸까, 택시기사는 알 수 없는 표정 위로 미소를 띤 채 느닷없이 영어로 된 작별인사를 선물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표정들 중에서 신중하게 하나를 골랐을 수도 있다.


“Enjoy yourself !”


로또 1등에 걸린 승객을 당첨금을 지급하는 은행본점 앞에 내려줄 때의 표정이 아마 저런 것일 것이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자기가 적잖은 역할을 해냈다는 표정.

요금을 낼 타이밍에 맞춰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끝나고 청중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주 긴 라이브 버전이었다.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자 토요타 크라운은 필요이상으로 많은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다급하게 떠났다.


배기가스 때문에 잘못 본 걸까. 크라운 이라고 버젓히 쓰여있는 토요타 차랑.

keyword
작가의 이전글2O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