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OE6

제 2장 소영 : 네, 문제 있어요

by 올드한

“만나는 사람 있어요? 결혼은 안해요?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인데 무슨 문제 있어요?”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이다지도 무례한 질문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까.

친밀하고 격의 없다는 미명하에 난폭하게 쑥 들어 온다.

마치 점령군이 적국의 성지를 진흙 묻은 군화발로 뭉개고 들어오듯.


거기다 대놓고 화를 낸다면, 나는 또 온갖 것에 지나치게 예민한 여자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것이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있는 대로 없다고 하면 없는 대로 좀 더 내밀한 성지로 진흙발을 들이 밀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 대답을 선택했다.


“네 문제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제 마음의 문제예요. 남에게 해 같은 건 끼치지 않아요”


평이해 보이는 사람에게 던진 전통적인 질문에 이런 종류의 지독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흔히들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고 나면 옆에 잠시 머물다 ‘다음에 또 봐요’하며 떠난다.

더 머문다면 피부병 같은 강한 전염성 질환이 자신에게 옮길까봐 저러는 것이다.

분명하게 마움의 문제라고 못을 박았음에도.


그나저나 그 대답이 완전한 거짓은 아니긴 하다.

소영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수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원장이 나를 찾는다고 누가 전하고 갔다.





“이번에 말이지… 자네가 좀 해야할 일이 생겼어”

‘자네’라니… 참 어이가 없어서 원.

내가 여길 다닌 지 꽤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우리가 스승과 제자라는 거창한 사이가 되어 있었나?

여기는 그냥 호흡 수련과 요가를 하는 프랜차이즈 학원일 뿐이라구요, 이 아쩌씨야.


“네? 제가 무슨…”


“목소리 톤 차분하고 사투리 없는 자네가 딱 적임자일쎄”

“목소리 톤이요?”

“그래, 일본어도 유창하다지 아마?”


소영은 생각했다. 아직 원장의 의도는 파악되지 않지만 ‘불온’ 과 ‘영예’ 사이의 뭔가가 감지되었다.


“우리 지부에서는 자네를 적극 추천했다네”

거절할 리 없는 보상 이야기는, 아마도 대화의 뒤쪽에 숨겨 두었을 것이다.

자꾸 원장 자신의 공을 먼저 늘어 놓고 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비윤리적이 쪽이 아니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톤으로 소영은 말했다.


“우리 프랜차이즈를 좋은 가격에 인수하고 싶어하는 곳이 나타났어”


“일본을 베이스로 하는 어떤 자본에 의한 인수겠군요. 제 일본어 능력을 언급하신 걸로 봐서는.”


“맞아. 자네가 중간에서 브릿지 역할을 좀 잘해주면 좋을텐데 말이야”


“그런데 다른 지부에 저 말고 더 적합한 인물들이 많을텐데요. 외부 인사를 잠시 고용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구요, 이를테면 아나운서라던지…”


“처음엔 다들 그 방향으로 목소리를 모았었네. 그런데 저쪽에서..”

원장은 이 정도를 말해 놓고 의자를 돌려 앉으며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

여기서 논점을 가르자라는 제스쳐였다.


원장의 나이는 아마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키는 175 센티미터 정도. 가끔 보았던 걸음걸이는 앞뒤로 움직이는 것 만큼 좌우로도 흔들며 걷는 좀 범상치 않음. 그 범상치 않음이라는 건 아우라가 느껴진다 어쩐다 그런게 아니라, 시야에서 어서 사라 줬으면 좋겠다라는 범상함.

이번 대화의 기회에 가까이에서 본 얼굴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그랬다.

조선시대 고을마다 있었을 ‘예방’의 인상. ‘이방’이 아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소영은 참을성 있게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다 먼저 질문을 했다.


“저쪽이라니요?”


그 점에 대헤 이야기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라는 표정으로

“몰라 나도 정확히는. 나 역시 이 회사의 최고 경영진은 아니니” 라고 원장이 다시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원장은 새삼 소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마치 롤렉스 시계의 진품 가품을 가려내는 감정사 처럼.


‘이 여자에게 뭔가가 있나’ 원장 스스로도 궁금한 것이 분명하다.

“남녀를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성성이 주는 부드러움이 양쪽 모두 윈윈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


여자로 사는 건 아무래도 이래저래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부드럽지 않으면 다들 불편해 하니까.


“바쁠 건 없어. 삼 사일 생각해봐. 내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피드백이었으면 좋겠고”


“한번 생각해볼게요. 답변하는 건 잊지 않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O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