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장 나 : 이 남자는 보기보다 똑똑하다
이스트 타워에는 로비에서 다섯 개 계단을 내려가면 식사와 커피를 제공하는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나, 정해진 식대에 사비를 어느 정도 보태야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짧딸막한 남자가 나를 이리로 데려왔으니 내가 계산서를 집어 들 일은 없겠지.
다만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으니 혹시 모르겠다.
어쨌든 하이 소프라노 음계에 걸려 있던 신경을 궁.상.각.치.우로 이루어진 널뛰지 않는 오음계로 안으로 내 신경을 잡아둘 필요가 있기는 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맛난 음식이 나오는 곳에서.
“그 여경은 말입니다. 이름은 아사노 마유미. 나이는 25세. 오사키 거주. 오사카 말고 오사키. 독신이었죠.
문서 상은 그렇단 얘기입니다.”
그는 메뉴를 보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전날 자정쯤, 한 남자와 호텔방에 들었고 남자는 새벽 두 시쯤 혼자 나간 것으로 CC TV가 말해주고 있어요. 도쿄 같은 대도시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범죄가 늘 들끓죠.
서울도 그럴 거고 부산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경박한 말투와 달리 문장은 이상하리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알려 주셔서 고맙긴 한데요” 내가 말했다
“경시청에서 직접 정보를 얻으신 겁니까?
이미 다 알고 계신 뉘앙스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가 말을 끊었다.
“이 사건에는 좀 예사롭지 못한 부분이 있단 말이죠. 현역 여경을 건드리는 일은 보통 피해요.
수사가 동료에 대한 복수로 번질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그 동작은 이미 충분히 못생긴 얼굴을
한층 더 불리하게 만들었다.
“그건 우발적인 경우라고 치죠.“ 그가 말을 이었다.
.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보기보다 똑똑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논점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곧바로 말로 옮긴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결국 정돈된 언어로 생각한다.
몽롱하고 찌그러진 이미지가 아니라.
만약 언젠가 우리가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시대가 온다면,
주고받는 건 언어로 된 생각이어야 할 것이다.
뭉크의 〈절규〉 같은 걸 받아서는
도무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테니까.
.
“네.. 그건 그렇다 치고요.” 내가 말했다.
“현역 여경인지 몰랐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서요?”
“보통은 목을 졸라 죽이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 방법이죠.”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살인사건이 아니라 미적분 공식을 얘기하는 것 처럼.
“힘의 격차가 약간만 우위에 있어도 가능하고. 이쪽에서는 그걸 경부 압박 질식사라고 부릅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런데 이 여경은 그렇게 죽지 않았어요. 가슴과 배가 눌려 사망한 걸로 보입니다.
그건 말이죠, 상당한 힘의 차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미 잡혀 온 남자의 체격으로는…
글쎄요.”
역시 평균 이상은 되는 지능이다.
이 남자 역시 생의 어느 지점에서 대단한 가속으로 누군가를 앞질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마 아주 이른 시점에서.
외모가 불리한 조건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버린 뒤에는,
그 가속이 자신을 어디에도 데려다 주지 못한다는 것까지 함께 이해해 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