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O26

제 6-8 장 나 :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by 올드한

남자는 송아지를 닮은 눈 깊숙한 곳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살짝 앞으로 숙여졌던 상체를 뒤로 빼며 내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잠시 택시를 합승한 인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 얘기를 굳이 제게 하시는 이유가…”


로비에서부터 레스토랑까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 국민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만든 왈츠곡이다.

곡의 시작은 아주 좁은 음역 안에서,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간밤의 사건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을 고객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속삭이는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남자는 테이블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보았다.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몸짓이었겠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의 용모와 체취는 모세가 홍해를 갈랐 듯, 우리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아까부터 멀찍히 쩍 갈라 놓고 있었으니까.


“쓸데없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냄새 날 것 같은 품 안에서 명함이 꺼내 졌다.


이시카와 토시히로.

이 근사한 이름이 이 으스스한 남자의 본명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아까부터 내내, 나는 지쿠소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른 바, 축생.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이 남자의 이름을 두고 투표를 하라고 하면 '지쿠소' 쪽에

스티커가 몰릴 것이다.


“저는 황립고대사연구재단의 이시카와입니다.”


나는 눈으로 조용하게 다시 목례를 했다. 이름을 들은 예의 차원에서.


남자는 차를 한 모금하고 침으로 입안을 적신 뒤 말을 이었다.

“지난 밤, 묵으셨던 호텔 방에서 어떤 변고를 겪지는 않으셨지요?”


“변고라니요… 이를테면…”


그는 초현실주의 미술품을 해석하 듯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디가, 웃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다 큰 어른 끼리 왜 이러실까 라는 듯.

“흉부 압박의 고통 같은 변고 말입니다”


여경 살인 사건 때문에 여기에 왔다는 건 핑계다.

이 사람은 나를 따라 이 호텔에 온 것임이 틀림없다.

내게 용무가 있어서.


괜한 일에 엮이지 않으려면, 앞에 앉은 이 범상치 않은 남자를 우선 떼어버려야 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지독한 가위에 눌렸어요. 땅 아래로 수맥이 흐르는 곳이었는지, 아주 험한 가위였어요.

저는 수맥이나 풍수지리를 믿는 편이니까. 그렇다고 믿어요”

거짓말 탐지기를 높은 확률로 통과할 수 있는 멘트를 날렸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가 살짝 김빠진 목소리를 냈다.


단도직입적인 방식이 효과적일 수은 있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쪽을 선호한다.

형식은 다정하고 예의 바른 언어를 빌어서.

나는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니까.

민감한 만큼, 시중에 통용되는 언어가 쓰여야 할 적재적소를 누구보다 질 안다.


그것이 외국어라도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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