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O26

제 6-9장 나 : Hello

by 올드한

그때 마침 식사가 나왔다.


내 앞에는 커다란 접시에 담긴 텍사스 브리스킷이,
그의 앞에는 간단한 샐러드와 롤빵이 놓였다.


저렇게 단촐해 보여도 어떤 대단한 이름이 붙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Sinfonietta di Verdure e Pane Dorato

(채소와 황금 빛 빵을 위한 작은 교향곡)


식사라는 행위에 대해 따로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대략 이런 순서일 것이다.
저작, 음미, 그리고 삼킴.

음미가 더 중요할까, 삼킴이 더 중요할까.


삼키지 못하는 음미를 상상해 본다.
혀 위에서만 맴돌다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하는 허망함. 그건 고문에 가깝다.

반대로 혀를 거치지 않고 곧장 목구멍으로 직행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그건 식사라기보다 우주인 음식을 주입하는 일에 가깝다.


이 남자를 전경으로 두고 앉아
고기를 잘게 씹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일은
지금의 테이블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버킷리스트에 있는 먹어봐야 하는 음식 목록 중 하나를 지웠다는 기록 정도만 남기면 충분할 것 같아
고기 한 조각을 잘라 서둘러 목으로 주입했다.


그 순간 위장이 짧게 수축했다.
어젯밤의 흉부 압박—그 변고의 여파일 것이라 생각했다.


“왜요? 입맛에 맞지 않나 보죠?”
그는 소처럼 풀잎사귀를 우걱우걱 옆으로 갈아내다 말고 물었다.


“아뇨. 갑자기 속이 좀 안 좋아져서요.”


“속은 늘 조심해야죠.” 라고 말한 후
그는 다시 샐러드로 시선을 돌렸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의 관심은 더 이상 내게 있지 않아 보였다.

그는 롤빵에 버터를 발라 놓고 아깝다는 듯이 조금씩 베어 먹었다.


“이 것도 드세요. 깨끗한 포크가 한 번 밖에 닿지 않았어요”




“그나저나 그 여경의 주위 인물들은 좀 알아 봤어요? 이미 조사는 진행됐겠지요?”

내가 화제를 돌렸다.


“최근에 어떤 여자와 자주 함께 다녔다는 거 말고는, 대체로 깔끔합니다. 주위가.

경찰 집안 이기도 하고요. 가족들 중 경찰이 수두룩 합니다.”


“최근에 함께 다닌 그 여자가 누군지는 알아 내셨습니까? 주요 용의자가 될 수도 있지 않나요?”


“CCTV에 둘이 같이 찍힌 장면이 있습니다만, 그 영상만으로는 특정이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그래서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가지고 있어요,

비슷한 실루엣의 여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내 눈을 피하지는 못할 겁니다. 내가 이래봬도요...”

그는 잘난 척을 하려다 관두고, 내가 건넨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나를 향해 덧씌우고 있던 신비주의적 시간은 완전히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원인이야 무엇이든 간에 나 역시 위장에 문제가 있는 현실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앞에 고기가 사라지면 그는 신비주의적 스탠스로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그 역시 어떤 정보를 지시 받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어떻게 아직 살아 있나를 알아 보라는 지시.


아무튼, 오늘의 교훈은 이거다.

고기를 양보해야 의심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끝.




그가 그 두 여자가 찍힌 사진을 갑자기 내 눈 앞에 들이 밀었다.

“혹시 한국으로 돌아 가시기 전 이 스타일의 여자가 보이면 말입니다.”


“네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까 그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사진 속 두 여자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그 CCTV 영상을 찍은 사진 한쪽 구석에 내 뒷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어제 저녁, 로비에서 남자들을 스캔하던, 나를 스킵했던 그 여자들인 것 같았다.

그 때의 감정이 아직 생생하다.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내 배역은 이제 ‘자주 지나가는 행인1’로 격상한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내가 따라 잡을 수 있는 진행이 절대 아니었다.


오! 하느님. 이 스토리에서 저를 하차시켜 주세요.

이 대로라면, 빨리 죽는 주요배역 7 정도 될 것 같아요.


괴기스런 건물을 그냥 지나치면 그 뿐, 천수를 누릴 가능성이 있는데도

굳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Hello! Anybody here?’ 한 후 스릴 넘치는 추격에 쫓기다가 결국 죽어 버리는

주요배역 7.


나는 그걸 하지 않을거다.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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