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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장 소영 : 아주 고전적인 이야기

by 올드한

“혹시 영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모릅니다”


“1초도 고민하지 않으시는군요.”


너무나 많이 불러 내서 닳고 헤진 이름.

이 상황에서,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늦었다. 이미 귀에 들어온 것을 가슴에 닿지 못하게 하기에는.

심장은 싱크홀처럼 꺼져 내렸고,

그 심장과 연결된 기관들이 한꺼번에 잡아당겨지며
결국 표정이라는 형태로 밖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그것을 목격하게 되리라는 것까지,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말은 대차게 해 두었지만.


턱수염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동작.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제스처는 아니었다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녔던 선후배 사이고”


소영은 머리를 뒤로 젖혀 등받이에 얹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턱수염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정도까지 시간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면 아는 사람입니다. ”

황급히 모른다고 대답한 것에 앞뒤가 맞는 이유를 넣어줘야 했다.


“김 씨입니다. 김 영한”

턱수염은 이렇게 말해놓고 한번 더 소영을 관찰했다.

맑은 물이 담긴 투명한 비커에 파란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번져 가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처럼.


“남궁이나 선우, 황보 같은 성씨는 물론 아니었고 김 씨 맞습니다.

남북한을 합치면 천만 명이나 된다는 압도적인 인구수를 가진 김 씨.”

기억력이 좋아서 우연히 알고 있는 이름일 뿐이라는 투로 소영이 말했다.


“어떤 단체나 학급에는 박 씨나 이 씨의 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말총머리가 밉쌀스럽게 끼어들었다.


“우리는 그 영한이라는 사람과 소영 씨가 연인관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거형이든, 완료형이든, 진행형이든, 미래형이든"

턱수염이 쇄빙선처럼 잡스러운 주제를 모조리 깨뜨리며 대화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가 적은 형식이겠네요.”
소영이 말했다.
“특정 날짜를 수반하는 과거형. 그런 적이 한 번 있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과거형.”


턱수염은 윗니로 아랫입술의 한쪽을 깨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소영이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그 영한이라는 사람이 뭔가를 저질렀군요?. 그래서 신성이 좀 피해를 입었고요.

제 추측이 맞나요?”


턱수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와우! 그럼 뭘 어떻게 한 걸까요?”


턱수염은 마치 자기가 조로 장군이라도 된 듯한 어조로 말했다.


“뭐, 아주 고전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그는 크립톤 행성 출신이었고, 어느 순간 흑화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압도적인 힘으로 신을 거역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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