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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5 장 소영 : 오 하느님, 제게 평화를 주시옵소서

by 올드한


소영이 기사를 읽으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예고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턱수염이 들어왔고, 말총머리가 뒤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 한결같은 콤비 플레이는 이제 묘한 안정감을 주기 시작했다.
시간차 공격을 늘 성공시키는 세터와 이동 공격수를 볼 때처럼.


“노크 정도는 하시죠” 소영이 쏘아붙였다.


“우리는 소영 씨의 인터넷 활동과 통화 기록을 계속 모니터링해 왔고, 이제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근의 검색 기록 때문입니다.
그 영한이라는 사람을, 소영 씨가 실제로 찾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턱수염은 숨을 고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한 건 했다는 듯이.


“그 말은 곧,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죠.
우리는 그의 거처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알려드릴 수도 있고요.”

전지적 작가 시점 같은 어조였다.
전지는 되었지만 전능까지는 닿지 못해, 미끼를 던지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화면보호기가 떠 있었다.
소영은 생각의 기어를 한 단계 올렸다.

그리고 최상의 답변을 골라냈다.

“다음부터는 꼭 노크해 주세요. 아무리 직장이라도 에티켓은 필요하니까요.”


턱수염이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정상 크기로 되돌렸다.

먹이를 놓친 뒤, 공중에서 다시 큰 원을 그리는 소리개처럼.


“그 점은 사과드립니다.
출퇴근 시간은 소영 씨 마음속 시계에 맡기셔도 됩니다.
응급실처럼 피를 흘리는 환자를 맞는 숨 넘어가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건 괜찮네요”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 두고 싶네요. 로레스 레인이 될 기회는 다른 여자에게 양보하죠.”




소영은 퇴근했다.

마음속 시계는 공식 퇴근 시간에 아직 맞춰져 있었다.


자율 출퇴근이라니.

‘나는 자유가 뭔지 몰라. 자유라는 건 그저 지난 치과 검진과 다음 검진 날짜 사이에 사탕과 초콜릿을 실컷

까먹는 것 같은 거 아냐?’

소영은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른 퇴근을 해도 갈 곳은 없었다.
회사에 앉아 있는 것이 싫어 퇴근을 하고,
숙소에 누워 있는 것이 싫어 다시 출근을 한다.


안식은 오가는 그 길 위에 있는 걸까.
아니면, 도착하는 곳을 안식처로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걸까.


오늘은 왜 이런 마음으로 있냐고 소영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스스로’는 대체로 대답이 없는 편이다.


‘오 하느님, 제게 평화를 주시옵소서”

하늘을 올려 보았다.


어? 달이 없다.


음력 날짜를 계산해 볼 때 오늘 이 시간에는 오른쪽이 일그러져 가는 달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어야 했다.


평택 공군기지에서 뜬 헬기인지, 느린 비행기인지 모를 것이
아득한 곳에서 붉은 등을 반짝이며 날고 있는 걸 보니 하늘은 분명 맑았다.


그런데 달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금일 영업하지 않음’이라고 써 붙여 놓고 문을 닫은 가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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