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 장 나 : I want to believe
나는 손사래를 쳤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100%까지 들먹이겠어요. 하지만 그 정도의 사실감 있는 묘사는,
직접 눈으로 본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물론 근거나 증거는 없습니다.”
나와 같은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너는 이성적인 편이 아니라는, 완곡한 공격을 했다.
그 기자는 내 얼굴을 맹렬하게 응시하다가 틈을 두고 질문을 이었다.
“X-File의 멀더처럼 I want to believe 신드롬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은 있습니까? “
“UFO나 외계인은 개인적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자님이 말하고 싶은 건,
정체 모를 것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는 성향이 제게 있지 않느냐는 거겠죠. 하지만 이건 좀 다른 차원이라고 봅니다. 평소에 품던 믿음과는 부류가 다른 존재가 나타난 겁니다.”
무언가 난해한 초현실주의 그림을 대하듯 나를 바라보던 기자가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라는 말투였다.
곧바로 질문이 또 이어졌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하다 보면, 말이 기억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른바 리플리증후군 같은 것 말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기억에는 작은 왜곡들이 즐비합니다. 커다란 왜곡도 몇 개는 있기 마련이고”
사악한 질문이었다.
인터뷰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사이에는 서로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오만함이 흐르기 마련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못된 질문이었다.
”개별적 인간의 기억은 그렇다 치죠. 하지만 이야기 속에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 등장합니다.
그를 인터뷰해 보세요. 지금 마침 3층에 있습니다.
이게 인간이라먼 어쩔 수 없는 기억의 왜곡인지, 의도적 날조인지
아니면 총체적 이야기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는 손목을 걷어 시계를 보았다.
이쯤이면 충분하다는 뜻으로.
그 이야기 속 직원의 면전에 내게 했던 것보다 훨씬 형이하학적 마이크가 들이밀어졌다.
“한국 사보에 실린 글이 사실인가요?”
“저는 잠이 들면 잘 깨지 않는 편이라 확실치는 않은데,
다음 날 호텔 직원이 아래층에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보고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러닝은 밖에서 하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짐을 싸서 바로 호텔을 옮겼어요. 꺼림칙하잖아요”
“그럼 혹시 글쓴이가 방에서 뛰었을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추론이죠. 다만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뛰는 게 보통 사람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고... 막 도착한 호텔방에서”
그 직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참! 기자님. 일본에서 오셨죠? 도착한 첫날밤 어떠셨어요?”
“샤워하고 맥주 한잔 마시다 기진맥진 곯아떨어졌죠.”
“조깅기구 없는 방에서 한 시간을 뛸 생각은 안 들지 않나요?”
사보 기자는 여기서 잠시 틈을 두었다.
외모만큼 아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본인이 그 괴기한 이야기 속에 등장한 게 기뻤습니까? 아니면 적잖이 불쾌했나요?”
“즐거웠습니다. 일단 제가 나왔으니까요”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는 대화를 빠르게 정리했다.
“그 글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었고. 감사는 저기 글 쓴 분에게...”
그 직원이 썰렁한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어쨌거나”라고 기자가 잘라 말했다.
많은 인터뷰를 진행해 오면서 남의 말을 막아설 때의 습관인 듯 높낮이 없는 억양이었다.
형이하학적 대화에서는 아마 자주.
그저 어딘가 좀 허언증에 걸린 모자란 사람인지, 아니면 예사롭지 않은 일을 실제로 겪은 것을 말하고 있는
정상적 사람인지 사보팀 기자는 시종일관 그의 얼굴과 말하는 본새를 관찰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사보팀 기자가 내 쪽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 사람도 저렇게 말하는데야 어쩔 수 있나. 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제스처였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몸짓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