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O26

제10-4장 나 : 흥미로운 이야기 한 꼭지였을 뿐입니다

by 올드한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점심시간이었다.

주변에 이렇다 할 맛집이 없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회사는 공장의 식당 메뉴와 품질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내가 이 회사에 불만이 없는 유일한 지점이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건, 인간이 만든 관념일 것이다.

오전 열한 시 오십 분 즈음이 되면, 나는 종종 시간이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십 분 뒤의 미래에 있는 점심시간이 더 멀리 달아나 버리지는 않되
그전보다 속도를 확 늦춰서, 마치 나를 의식하는 것처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메뉴가 좋아하는 고사리 나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대상이 적은 삶에도, 점심시간은 매일 기다린다. 꼬박꼬박,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이 명제에 대한 내 대답은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이다.

아침을 건너뛰고 출근하는 날이 많아서,
점심시간 종소리와는 상관없이 십 분쯤 먼저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모자라거나 비어 있는 반찬 통을 미주 치는 일 없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실컷 떠 담는 상상까지 포함해서.




식사를 마치고 로비에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아이고, 오랜만이군요 김 선생님, 아니 김 팀장님”


처음 보는 번호였다.
발신 국가는 일본.
번호는 낯설었지만,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신가요?”

나는 일부러 감정을 빼고 물었다.


“이거 섭섭합니다.”
상대는 웃음을 섞어 말을 이었다.
“저, 이시카와입니다.

시나가와 프린스 호텔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헀던 이시카와요.”


그의 목소리는 그 생김새와 싱크로율이 높았다.

마주 보고 있을 때는 그 생김새에 압도되어 목소리 같은 것에는 신경이 덜 갔던 것 모양이다.


양치질 중에 누가 말을 걸면 대답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휴대폰을 다른 쪽 귀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하하, 밥까지 같이 먹은 사이에 안부 정도는 전하고 살아야죠.

제가 이래 봬도 인연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랍니다”


이놈의 SK 텔레콤. 왜 이런 전화가 걸려올 때만은 통화 실패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지.


“저는 그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요” 나는 건성으로 응수했다.


“그래도 2인분 밥값은 제가 냈습니다.” 그는 웃으며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잠시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일간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말이죠. 어떻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전화로 이야기하시죠” 나는 선을 그었다.


“만나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그 사보에 실린 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제게 악몽을 꾼 것 같다고 하셨는데, 글을 읽어보니 글쎄요”


“실재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쓰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한 꼭지였을 뿐입니다.”

나는 다시 전화기를 다른 쪽 귀로 옮겨 잡았다.


“하하, 그러십니까.” 그는 이미 결론을 낸 사람처럼 말했다.

“사보 팀에게는 꽤 쿨하게 인터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이틀 뒤 퇴근 시간쯤에 뵙죠. 그럼 이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그의 위치가 순식간에 ‘갑’으로 이동하는 감각만 남았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오래도록 내리지 못했다.


시간은 어디에서 어디로도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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