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블랙박스
블랙박스가 구형이라 가끔 메모리를 비워야 한다.
궁중 예절교육을 받는 듯하는 운전이라
기록을 열어 볼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한 번 동영상들을 보았다.
길에만 집중하려 음악 한번 틀지 않고
혼잣말 한 번 없이 운전하는 모습들.
신호 잘 지키는 모습들.
보행자를 배려하는 모습들.
으스대거나 시니컬하거나 염세적인 편이라는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지옥 같은 시선을 느낄 때에 한하는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때의 나는 아직도
훈육 잘된 13살 소년처럼 착하고 올바르다.
어느 늦은 밤, 블랙박스 속의 나는 다짜고짜 어디로 달린다.
구형 블박 속의 풍경은 육안으로 보는 것과 많이 다르다곤 해도
너무 낯설기만 하다.
기억에 없다.
어딜 그렇게 가. 아무런 힌트 없이.
그 애한테 가니?
외로운 나도 데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