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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Feb 17. 2023

책리뷰 :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기사단장 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을 타기 위해 공을 들여 썼다는 소문이 무성한 장편소설이다.

 

도입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자욱한 안개(떡밥)를 뿌려 놓고 시작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는 호기심을 천천히 유발한다.

 서서히 취하는 낮은 알코올 도수를 가진 과실주처럼.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중반부가 펼쳐진다.

이 때는 진짜… 장난 아니다…. 식음 수면 대소변  전폐 수준이다.

그리고 또 아무것도 수습하지 않고 급하고도 시시하게 끝나 버린다.



너무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의미 없고 상징성도 없고 그렇다고 아름답게 묘사되지도 않는 유부녀와의 섹스씬. 

 

꼭 등장하는 신비한 어린 여자아이. 

미성년인 그 여자아이의 그 성장발육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거의 변태에 가까우리 만치.

무릇 글쟁이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할 수 있다지만… 

 

음악( 음악이 아니라 다른 분야일 때도 있다)에 대한 과도한 설명. 

음악이 그의 문학에 관여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다음 전개가 다급하고 몹시 궁금한 상황에서 음악에 대한 설명이 쉬지 않고 끼어든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기에 몰두했을 법한 지식을,  다음 작품에 총망라한다.

이게 클라이맥스를 향하는 사려 깊은 점증 법일까?  갑갑할 때가 더러 있다.

이렇듯 소설 중간중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끼어 있다.

 

위에 말한 단점들은 또 아무것도 아니다.

변화무쌍한 마라톤 코스를 잘 뛰어 오다 35km 정도에서 똥이 마려웠는지 택시를 불러 타고 결승선을 통과해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1Q84에서도 그랬고.



무라카미 스타일이 있다.

장면 장면 분위기 묘사가 탁월하다.

‘내가 만약 저곳에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하거나 상상할 필요가 없는 정도이다.

 

엄청난 규모로 들이대는 아주 적절한 은유와 비유로, 물 샐 틈 없이 다 말하고 다 느껴 준다.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의 작품 중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글을 고집스럽게 쓰는, 나이 70이 넘은 그의 의식 속에는 분명 다른 뭔가가 있다.

 

기발하고 기묘함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로 작품마다 반복되는 '본인의 전작에 나온 비현실적 현상들에 대한 오마주'는, 관념으로 지어 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개인적 경험인 것 같다.

무릇 세상에는 별의 별일이 다 있으니까.




기사단장 죽이기 2권의 제목은 ‘전이하는 메타포’이다.

어원적으로 ‘역전’ ‘상갓집’ ‘느낌적 느낌’처럼 아주 틀린 말이다.

메타포 자체가 전이의 의미를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제목을 뽑곤하는데 조금 웃긴다.

'섬광의 플래시'

'음속의 소닉'

'전설의 레전드'


무라카미도 그나라 출신임을 어쩔 수 없나보다.

 



메타포 (은유) : 다른 범주에 있는 두 대상의 갑작스러운 동일화. 


물론 그 두 대상은 억지스럽고 엄청난 사고의 비약과 전이가 있을지언정

아주 조금이나마 연상이 가능해야만 설득력이 있다.

 

뭐 이런 거… 그녀는 꽃이다. 너는 그리움이다.

목포는 항구다 같은 것은 안된다.

 

무라카미는 세상을 은유가 가득한 곳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기는하다 .

 

(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선이 가득한 세상인 것이 더 맞지만 )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그는 다른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실제적으로 Physical 하게. 

 그 경험으로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데….

 '그 깨달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육체의 노쇠'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듯하다.

 점점 의미 없이 관음적이 되어 가는 그의 글에서 알 수 있다.

 

깨달음이라는 건 ‘다 내려놓고 욕심 없이 살기’ 같은 안분지족의 개인적이고 허망한 성취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것으로 인해 뭔가 세상을 쥐똥만큼이라도 바꾸어야 한다. 

무라카미의 글들은  쥐똥 이상의 영향력으로 문학계에 한 획을 이미 그었지만 

그가 요즘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시간의 역류], 즉 신의 영역을 탐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듦을 어쩔 수 없다.


 

초현실적이 되어 가는 그의 최신작들을 읽어 가며

그의 메타포가 내게 전이될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고 있다.

아니 그런 예감을 가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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