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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Feb 20. 2023

일상 미스터리 : 장산범 전설 혹은 실재


오래전 불국사 근처 선산 입구.


PM 5:30


9월의 산속은 벌써 해가 뉘엿뉘엿 어슴푸레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소리 없는 비가 내려 산의  음산함을 더했다.


추석 때  가족들과 함께 가지 못해 홀로 성묘 가는 길.


첫 고비는 산 입구에 들어 서자 마자 나타나는, 왠지 흰빛을 띠는 봉분 두 개.

비석도 묘비명도 없지만 늘 벌초가 되어 있는 무덤.

그곳을 지날 때는 언제나 소름이 돋곤 했다.


그곳은 선산. 

먼 친척분의 무덤일 수밖에 없다면 먼 자손을 굳이 해코지하시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없다면,  다시 말해 그 산과 연관 없는 다른 사람들은 차마 발을 들여놓기가 꺼려지는 광경이다.  


'아직 낮이다. 괜찮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고  걷는 속도를 높였다.

다섯 시간을 운전해서 도착한 곳.  조금 더 일찍 서둘러 한낮에 도착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그곳을 완전히 지나쳤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히힛


뒤에서 들리는 앳된 소녀의 웃음소리.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져 무척 재미있다는 웃음소리.


그건 그 시간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모골이 송연했지만 이내  정신과 영혼을 추슬렀다.


'뒤를 돌아봐야 할까.  앞으로 냅다 뛸까'


공포는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법이다.  귀로 들린 것은 눈으로도 확인해야 공포가 해소된다.

그래야 적어도 의문은 사라진다. 


고개를 돌리자  하얀 털로 뒤덮인 뭔가가 소나무 숲으로 휙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침엽수는 그 속으로 사라지는 대상을 아주 잘 가려 주지 못하고 오랫동안 노출시켰었다.


그렇지만 환영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이 사건은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친지들은  불경(不敬)을, 가족들은 두려움을, 친구들은 걱정과 조소를 성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산. 

해발 634m의  남부 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 


옛날에는 그곳을 상살미산이라 불렀다.

할머니는 그곳까지 나무를 하러 다니셨다.


장산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범이 나온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희고 자그마한 짐승이 땔감을 잔뜩 이고 가는 아낙들의 머리 위를 껑충껑충 뛰어 혼을 빼놓은 다음 물어 간다는 것이다.



표범이다 삵이다 말이 많지만,  옛사람들이 미개하다 해도 색깔을 구분하지 못했을까.







장산이 속한 금련산맥은 울산단층 즉 몇 년 전 전례 없이 큰 규모의 지진이 있었던  불의 고리 그 연속선에 있다.  당연하게도 장산범의 활동반경은  그 지진의 고리인 부산 울산 경주 일대일 것이다.


경주 선산에서 보았던 그것은  환영이 아닌 장산범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 역시 잘 모르겠다.  허연 형체와  사라지는 뒷모습만 보았으니.





그 옛날  '전설의 고향' TV 프로그램의  단골 마무리 멘트인

"이 이야기는 충남 보은 땅에 내려오는 전설입니다"를 기억한다.


옥황상제와 산신령과 귀신들이 출몰하고  고을 사또들이 활약하는 판타지 세계관이 있는 신비의 땅 충남.

2023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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