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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Jan 31. 2023

잡담 : 원룸의 공포

늦은 퇴근 후 원룸 문을 열고 방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다시 손을 등 뒤로 뻗어 문고리에 갖다 댈 수밖에 없었다.


벌어진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달빛으로도 충분히 

웬 여자가 내 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체만 대충 보이고, 흐물흐물 공중에 떠 있는지 하체는 없는 듯했다.


‘뭐지?’ 

도망갈까….


딸깍. 


시차를 두고 원룸 문이 저절로 잠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역시 아주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원룸 안의 공기는 온통 차갑고도 위험한 기척을 내뿜고 있었다.




얼마간 사지에 마비가 왔다.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의 안구.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분별하려 하지 말고, 뒤 돌아 문을 열고 바로 도망갔어야 했었어’라는 

 후회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어떨 때는 신중함, 이성, 상식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두려움이라는 본능 그 하나에 온전히 내주어야만 한다.   아무리 무료한 날들을 살고 있지만,  생명이 위태로워질 정도의  흥미진진한 전개는 피해야 한다.


둘 중 하나다.

내 눈이 어떻게 되었거나  내 방이 어떻게 되었거나.

달 빛이 더 환해야 했었거나  더 어두워야 했었거나.

내가 이 일을 소설로 쓰거나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 나의 죽음이 실리거나.




여기서 죽는 것이 두려운가?


딱히 두렵지는 않다.

내가 나인 채로 나 자신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심호흡을 했다.


전등 스위치까지의 거리 1m, 조금 전 딸깍하고 잠긴 원룸 문까지의 거리 30 cm.


더 짧은 거리에 있는 원룸 문이지만, 거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돌아서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신발을 한 짝 벗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원룸에 들어서며 형광등을 켜는 일은 내가 제법 잘하는 일이었다.


아마 그 작업을 능숙하게 해 온 지는 10년 정도.

스위치의 높이, 버튼의 누운 각도와 크기. 저건 늘 시선을 두지 않고도 켜 왔다.

나라는 존재와 내가 형광등을 켜는 동작 사이의 경계가 없어질 만큼 능숙하다.


그 능숙함이라는 것은 어쩌면 저 앞에 있는 (여자 형체를 하고 있는) 

기이한 대상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숙련이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리 나지 않게 다시 심호흡을 했다.  

경직된 견갑골에 충분한 산소를 보내  이내 실행될 빠른 움직임에 대비시켰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기 앞의 여자 형체는 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응시라기보다는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미천한 인간. 네까짓 게 할 테면 해봐라'는 듯. 


분노와도 같은 감정이 내 안에서 끓어올랐다.

심장의 박동을 가라 앉히고 신경을 안정시켰다.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형광등을 켰다.

고대의 악마들과 짐승들과 정령들이 포위를 풀고 비명을 지르며 일시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몇몇 요괴들은 억울한지 항의라도 하듯 형광등이 바로 켜지지 못하고 몇 번이나 깜빡거리게 했다.


끝내  백색의 통일된 빛이 방을 온전히 비추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확인한 후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는 동생이 또 술집에서 연예인 사진을 뜯어 와 내 원룸 벽에 붙여 놓았다.


망할 놈.

내일 회사에서 만나기만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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