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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Jan 30. 2023

3. 아직도 그녀는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대는 나만의 여인이여. 보고 또 보고 싶은 나만의 사랑.'


오디오 시스템이 구식인 차로 장거리 출장을 자주 다닌다.

CD를 한꺼번에 여러 장 넣을 수 있는 그 시대 2009년에는 최고였던 차. 그러나 지금은 2023년.

이 차를 중고로 샀을 때 함께 있던  90년대 베스트 가요모음과 폴모리아 경음악 세트 CD를 버린 것은 성급하고 경솔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운전 중 음악은 내 육성으로 듣고 있다.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나 색소폰 같은 관악기에 비브라토가 없으면 밋밋하기 짝이 없듯이, 어떤 면에서는 최고의 악기인 사람의 성대에도 바이브레이션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연습 중이다.


그러다 문득 흥얼거린 노래.  김건모의 미안해요.


내 사랑도 내 사랑이지만 

이 노래엔 엄마의 사랑이 생각나 더욱 가슴이 미어져 흥얼거리는 걸 멈췄다.





아버지는 오른편으로 눕는 것이 편하신 듯했다.

그 오른쪽으로 마주하는 것은 벽.  

"이 쪽으로 좀 보세요"라는 엄마의 말에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으이구 재미없는 양반. 마누라 얼굴이 저리 보기 싫을까"라는 말에는 베개를 한번 돋아 고이셨다. 웃고 있는 얼굴이라는 거 표시 나게.

엄마는 그 모습을 그렇게 좋아했다.




아버지는 죽음 앞에 초연하셨다. 

의사의 시한부 선고가 없었어도, 가히 짐작되는 죽음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모들이 아버지 앞에 엎어져 오열을 할 때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의 기미조차 없었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경외감마저 들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선명히 드리우던 며칠.

아버지의 시선은 언제나 엄마를 향해 있었고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셨다.

꺼져 가는 목소리가  연약한 날숨에  한 번 실렸다.


'고맙고 애썼다.'

목소리가 들렸다기 보단  아버지의 입술모양에 따른 환청이 병실을 가로질렀음을 나는 느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다시 말해 보세요" 라며 엄마는 흐느꼈다.


아버지는 시선을 거두고 오른편으로 돌아 누우려 하셨다.

'바보야'라는 발음 분명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푹 꺼진 베개는 영영 다시 돋아지지 않았다.


"네. 저 바보처럼 살다 갈게요. 곧 또 봬요" 엄마는 아버지의 머리맡에 얼굴을 묻으며 전송했다. 

막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에서 엄마만 알아볼 수 있는 작은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바보처럼 살다 갈게요. 곧 또 봬요.  이 말은,

[혼자서는 잘 해낼 리 없으니 빠른 시간 내에 함께하길 바라며,  이렇게  휑하니 가버리는 만큼 다시 만나는 날, 많은 것을 망치고 왔더라도 감안하여 많이 책망하지 않길 바라며,  아시다시피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는 것을 다시 고백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리라 믿어요] 

그런 인사였다.  

출처 : 단편만화 소풍  이지현 作




'그대는 나만의 등불이여. 어둡고 험한 세상 밝게 비쳐 주네요'


아버지 내내 잊지 않고 사셔도 돼요 엄마.

하지만 아버지 만나러 가고 싶단 말은 아직 일러요.


왜냐면,

나만의 등불은 아직 엄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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