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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Mar 12. 2023

잡념 : 톰과 제리

유년기를 벗어나자마자 제리가 죽도록 얄미웠어. 

톰이 먼저 잘못하는 것이 딱히 없어 보이는 이유로.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늘 나를 먼저 찾아내 나하고만 뼈 마디마디가 쑤시고 혼이 빠질 만큼 놀아 주는 제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쥐덫에 치즈를 올려놓고 잡히기를 기다리는 내 아둔한 속임수에 언제나 발끈하는 제리처럼

뻔한 내게 반응하고 상대해 놀아주는 이가 필요해.


쫓고 쫓기는 놀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해봐야 어딘가 의미 있는 곳으로 발전할 전망 없는 재능이지만

영원 동안 해도 좋아. 

 

실제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 전망이 높으니

그저 필요한 건,  밤에 잠을 자연스레 부르는 소일거리.


술래잡기 좀 숨차겠지만 룰이 간단해서 좋아.


난 이렇게 넓고 다양하고 험한 현실세계의 룰들이 몹시 어려우니까.





쫓고 쫓기는 룰을 어기면 두 번 다시 만나주지 않고 홀연히 사라질까 두려워서

무작정 쫒는 관계만을 유지하는 문제 많은 겁쟁이의 입장을 내가 고수할지 몰라.


한 사람 또 한 사람 내게서 떠나갔어.

이별을 전하고 떠나기도 하고 대개는 예고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소중한 진짜들을 다 떠나고 남은 건 하찮은 모조품들뿐.


뻔하게 구는 건 그러지 않을 때 받을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살아가게 하기 위한 나름의 지혜야.

평소와 다르지 않을 것. 되도록 튀는 행동으로 눈에 거슬리지 않을 것.

어제 했었던 행동과 오늘 할 행동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힐 것. 

     


그러나 한 번은 제리 자신에 대해 속내를 털어놔 주길바래.

제리가 제리라는, 명랑하지만 참을성 없는 한 마리의 생쥐에 지나지 않는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어깨를 맞대고 털어놓아 줬으면.

그게 찍찍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어떤 일이 자신을 기쁘게 하고 어떤 일이 슬프게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어.


제리는 두뇌 회전이 상당히 빠르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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