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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Feb 17. 2020

앤틱은 누가 살까. 01

벌써 20년!!! 달고 씁스름한 자영업 분투기 12

자금이 많지 않았지만  10년 이상 피부관리실로 투자는 안 하고 오로지 파먹기만 한 가게 자리는 조명부터 바닥까지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다행히 좁은 면적이라 기본적인 것만 손보면 큰돈은 안 들겠다 싶었고 무엇보다 2층 높이 통창에 꼼꼼히 가려진 그 구리구리한 팥죽색 선팅만 말끔히 걷어내도 속이 시원하겠다 싶었다 


그 창을 원래대로 복원해서 거리를 훤하게 밝히고 밤으로는 아름다운 샹들리에 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황홀과 찬사를 받는 상상을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틈만 나면  그 가게 앞으로 달려가서 올려다보고 둘러보고 꼼꼼히보고 그 짓을 반복을 하니 남편도 결국 허락했다.     

일단 가게를 계약하니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였다.      

전부터 물건을 가져가라고 줄창 나는 꼬시던 이태원 가구점 언니는 작은 면적이지만 물건이 빼곡해야 장사가 잘된다고 속이 보이게 영업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액수의 물건들을 그 언니한테 구매를 했다.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비상금과 친정집 개발하면서 여차저차 콩고물처럼 떨어졌던 수고비 등등. 

살면서 우연히 굴러들어 오는 몇 번 안 되는 목돈이 다 거기로 기어들어갔고 그것도 모자라 대출까지 좀 더 받았다. 대출 없이 시작하겠다는 내 장담은 처음부터 삐끗했다. 


장사를 시작할 때 의외로 초도 물건비가 많이 든다. 

물론 물건이 한두 개 있는 것보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어야 고객의 시선을 끌고 한 개라도 더 팔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내가 경험이 없으니까 도매상인이 권하는 대로 숫자를 늘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거실 탁자를 구매하면서 꼭 진짜 거실처럼 소파 탁자 콘솔 다 꾸며진 쇼룸에서 건져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객은 별로 없지 않나? 의심이 들지만

도매상인이 굳이 ‘구색’을 강조하며 이것저것 자꾸 초도물품의 숫자를 늘리면 어쩌겠는가. 그냥 군말 없이 받을 수밖에 없다. 경험이 없으니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여하튼 그 좁아터진 매장에 소파세트부터 콘솔, 장롱, 서랍장, 코너장 , 사이드보드, 심지어 낡은 주방 선반을 개조한 개수대까지 빼곡하게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물건이 찼다. 

너무 많이 샀다... 생각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딱이 계약서 없이 진행되는 도매공급의 경우. 

약간의 갑을관계가 만들어지는데 일반적인 경우는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구매자가 갑이다. 

하지만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가게를 차려주는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면서 꼭 그렇게 말한다) 도매상인이 이래라저래라 이렇게 해야 장사가 된다. 저렇게 하면 석 달 안에 망한다. 얼르고 달래고 반쯤은 얼이 빠진 예비사장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오픈 매장의 사장들이 이런 경험들을 한다.

장사 정말 잘되는 ** 샘플 매장들을 둘러보고 오면 오픈 준비의 얼빠짐 위에 빨리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심까지 더해져서 ** 사장님도 이렇게 하셔서 성공하셨다는 영업사원의 감언이설이 다 금과옥조처럼 들리게 된다.      


**사장님도 처음엔 안 하려 하셨다. 

결국 우리말대로 하셔서 저렇게 대박 치시는 것 아니냐

전국 수백 개 매장을 차려본 우리말을 들으시라. 

나중에 저한테 한턱 내실래도 만나기 어려우시다. 제가 다음 주만 오픈 매장이 열 개다. 

등등.     

결국 1층 8평, 2층 3평 다해서 11평 매장 안에 거의 7000만 원어치의 물건을 쌓아놓고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영국 앤틱이 수입상도 많아지고 진품 가품 논란으로 가격대가 많이 내려왔지만 당시에는 소파세트 한조에 800-900만 원 상당이었으니 깔린 물건만 짭짤하게 팔아도 남는 장사구나... 싶었다.      

장사는 입지라고 하지만 앤틱은 처음부터 몫이 좋다고 더 잘 팔리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몫이 좋다고 지나가다가 문 열고 들어와 저도 하나 주세요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순전히 단골 손님으로 끌고 나가야 야한다.  내가 분당 어느 한산한 주택단지 저 골목 끝자락에서 예쁜 앤틱을 반질반질 윤내고 앉아 있다는 것을 어여 빨리 알리는 것이 수였다.      

2004년 여름. 

기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내 첫 가게를 오픈했다.      


(앤틱은 누가 살까. 02 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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