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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Feb 17. 2020

앤틱을 누가 살까 02

벌써 20년!! 달고 쌉싸래한 자영업 분투기 13

세상에 제일 열 받는 장사가 다들 구경하고 그냥 나가는 장사다.

구경이고 뭐고 들이닥치자마자 살 거 사고 돈부터 내놓는 장사가 최고의 장사라면

이 사람 저 사람 들어오기는 들어오는데 들어와서는 무료 박물관 마냥 한참 구경하고 그냥 다 나가버리는 게 제일 기운 빠지는 장사다.  그런데 그게 최악이 아니었다. 

누구도 거들떠 안보는 가게가 진정한 최악이라는 걸 나는 하필 내 가게를 열고야 깨달았다.      


물론 신기하니까 기웃거리기는 하는데 어지간히 신기해야 들어와서 이건 어떤가요. 저건 어떤가요 할 텐데 느닷없이 골동 가구를 그것도 반닫이니 개다리소반이니 어디선가 봤음직한 한국 골동가구도 아니고 바다를 지구 반 바퀴 씩이나 돌고 돌아온 영국 프랑스 골동가구니까 뭘 알아야 궁금하지 그냥 창 너무 보이는 모습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서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창에 다닥다닥 찍혀있는 손자국으로 아... 사람들이 밤사이 많이들 기웃거렸구나... 짐작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더러는 들어오기도 하고, 이런 것도 들여다 파는군요. 관심도 보였지만 작은 소품 하나도 10만 원이 넘고 가구들도 보통 100만 원 200만 원 하는 것들이었으니 팔리기가 어려웠다. 

보석이나 비싼 가전제품은 돈이 없어서 그렇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데 골동가구는 사실 우리 친정엄마도 얘야, 나는 됐다. 행여 팔다 남는 것 있어도 나 줄 생각은 하지 말아라 하셨으니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업 아이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랴. 

그런 거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왕 시작했으니.      

장사가 되네 안되네 해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장사여서 매일매일 매출이 나지 않아도 큰 걱정도 안 되었다. 

뭘 좀 팔기는 하나... 하는 동네 사람들의 근심 어린 인사를 받는 것이 가장 분주한 하루 일과였고 유치원 다니는 큰 아이가 들락거리는 가게 앞마당이 차 다니는 길이랑 너무 가깝다는 것이 장사보다 더 큰 걱정이었다.      

한결 엄마가 가게를 차렸다는 소문이 퍼져서 더러는 지인들이 와서 몇만 원 미만의 부담 없는 소품 거리를 팔아주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사치레여서 제대로 된 매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낯 모르는 아주머니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님 들어오라고 차려놓은 가게에 모르는 사람 들어오는 게 당연한데도 낯선 이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오서 오세요 대신 누구세요?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머.. 앤틱 샵 아니에요? 손님이 되레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 네. 앤틱 샵 맞아요 구경하세요.  

내가 누군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손님 맞을 태세를 되찾았다. 더러는 놀러 더러는 구경하러 사람들 수많이 들락거려도 물건을 사러 작정하고 들어오는 사람은 느낌이 다르다. 


어디선가 정자동 주택가에 앤틱 샵이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꽤 멀리서 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가구들을 꼼꼼히 둘러보던 손님이 그날 145만 원짜리 사이드보드 (콘솔보다 좀 크고 높은 수납장)을 하나 샀다. 가게문 열고 처음 올려보는 매출다운 매출이었다.      

155를 부르는 가격을 딱 10만 원을 깎더니 이거주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네? 하고 놀래서 반문을 했다. 이거를 달라는 말이 외국어처럼 생소했다. 

고객도 네? 하고 다시 반문을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라는 주인장이 그 손님은 또 얼마나 놀라웠을까.       

수천만 원을 들여 가게를 차릴 때의 용기는 어디로 가고 

물건이 팔리는 것이 그토록 신기해서 나는 손님한테 진짜 사실 거냐고 거듭 확인을 했다. 

하마터면 이걸 왜 사시냐고 물을뻔했다. 

도대체 어떤 각오로 이걸 사시냐 이걸 사겠다는 그런 경정을 도대체 어떻게 하게 되신 거냐.

막상 사가는 손님이 신기해서 차마 말로는 못하는 질문이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신생아 나들이 가는 것처럼 고령의 나무가구를 이불로 싸고 또 싸고 과하게 포장을 해서 배송을 보내던 날 

딸 배웅 하는 친정엄마처럼 멀어지는 트럭의 꽁무니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잘 가라 잘 가라 마음이 오글 오글 했더랬다.     


그날 이후로 수많은 앤틱을 팔고 사고 수많은 물건을 수입하고 판매했지만  그 

엉성한 첫 매출의 강렬한 기억은 오랫동안 떠올릴 때마다 새삼 신기하고 기특했다.      

손님이 있건 없건 가게는 자리를 잡았다. 

사는 사람,  안 사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지나치는 사람, 카페인 줄 알고 커피 둘이 요 외치며 들어서는 사람, 택배 맡기러  들르는 윗집 사람, 각종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나와 8평짜리 세상 특이한 가구점은 점점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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