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Feb 18. 2020

성공기라고 쓰고 분투기라고 읽는다.

(번외 편) 자영업 분투기 난 왜 이걸 쓸까....

거창한 매출이 없는 날도 나는 출근을 한다.


몽블랑 만년필 정도는 꺼내야 어울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계약도 없고 매일매일 매장 앞에 긴 줄을 세우는 대박집도 아니다.  

그래도 아침이 오면 출근을 한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그날그날 새벽에 내리는 만나를 먹고 40년을 살았다.

딱 내 이야기이다. 어디 가서 빚 더 안 지는 게 어디예요. 그냥 그달 그달 월세 내면 다행이지요.  내가 기운 없어하는 친한사장한테 해준 말은 사실 나 자신한테 한 말이다.


딱이 할 일도 없는 저녁시간.

티비를 켠다.


수억 매출을 기록한다는 여사장이 나온다.

저게 매출액일까 순익일까. 순익이라면 원가율이 얼마나 될까.

결론적으로 차 떼고 포떼고 저 사장은 얼마를 가져갈까.

빠른 속도로 질문들이 지나간다.

사장 노릇 좀 해봤다고 질문이 딴 아줌마들에 비해서는 꽤 구체적이다.

하지만 딱 하나 공통점은

배가 아프다는것.

좋겠다. 장사할 맛 나겠다.

방송이라 과장했다 하더래도 다 뻥은 아닐 테니까.

장사가 잘되는 것은 맞겠구나.

좋겠다. 살맛 나겠구나.


근데...

나도 저렇게 티비에 나왔던 시절이 있었지.

피디와 작가들이 들이닥치고. 적당히 과장을 섞고. 내 경험담 중에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는 더욱 강조하고. 애들 데리고 고생한 내용은 더욱더 힘겹고 궁상맞게 우구러뜨린다.

아이들이 어렸어요. 얼마나 어렸지요? 그게... 열 살 때인가... 아. 그래요. 여섯 살로 가지요. 그게 더 자연스러워요.

어느 영화의 대사인데 거의 정확해서 혼자 웃었더랬다.


자영업은 성공기가 있을 수 없다.

비유하자면 남들이 보는 자영업자의 인생은 마치 무 토막을 자르는 것과 같아서

어느 무의 한중턱을 잘랐을때 바람도 안들고 촉촉하고 한눈에도 물기가 차르르. 깍두기 담그면 차암 맛나겠다... 그런 무가 있다. 그 순간은 성공이다.

그런데 그 자영업자 본인의 입장에서는 내 인생은 그 무 전체이다.

어느 중턱을 자르면 혀가 다 얼얼할 정도로 아린 맛이 돌아서 맨입에 먹다가는 눈물이 핑 돌고

어느 꽁지 부분에는 보관을 허술히 했나. 바람이 들어서 국으로도 김치로도 만들어 먹을 수가 없다.

맛있는 부분은 얼마 안 되고 버리기도 먹기도 애매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게 자영업자의 시간이다.


성공기라고 쓰고 분투기라고 읽는다.


그저 하루하루 분투 하는 것이다.

매출이 좋은 날도 매출이 별로인 날도.

성공했던 시절도. 실패했던 시절도.

직장인이 재미도 없는 직장 때려치우지도 않고 월급 보고 열나게 출퇴근을 반복하듯이.

그래서 한 줌의 먹이를 얻듯이.


매출이 안 오른 달은 이제 어떻게 먹고사나 걱정 걱정하면서

잘될 때나 못될 때나 분투를 분투를 한다.

그리하여. 비극스럽게도 잘될 때도 분투다.

티브이에 나오건. 금탑 산업훈장을 타건.

성공기라고 쓰고 분투기라고 읽는다.


법륜스님의 말씀에 산속에 다람쥐도. 닭도 그냥 산다.

너는 왜 그냥 못 사나.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실망하고 힘든 것이다. 하셨다.

살수록 맞는 말씀이다. 싶다.

그냥 열심히 살고 내 시간을 채워나간다.

성공하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내 인생이기 때문에.


주머니 속의 만원 지폐처럼.

어느 순간 나한테 선물처럼 성공기가 주어 진적이 있다.

그때 행복했나.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지나고 나면 전체적으로 그냥 그림 한 폭이다. named my life.

그 부분이 좀 더 밝은 칼라로 예쁘게 칠해져 있었던가 말았던가

이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니 봉준호가 읽었다는 마틴 스콜세지의 책한 구절은

지난 며칠 내내 내 귓가를 어른거린다.

"most persnal is most creative"


나의 personal 한 20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건 정말 크리에이티브하니까.

세상에 언제 또 이바인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분투적인

20년을 또 살아내겠는가.

지구가 열두 번 꺼꾸로 돌아도 이런 일은 다시 안 일어날 것 같아서.

분투기를 써본다.


(원래대로 앤틱은 누가살까 03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앤틱을 누가 살까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