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써 20년!! 달고 쌉스름한 자영업분투기 14
처음부터 치밀하게 단열을 하고 지은 건물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11월이 되면서 가게는 엄청나게 추웠다. 그냥 밖에 서있나. 안에 서있나 별 차이가 없었다.
원래 외부였던 뒷마당을 처마를 올리고 벽을 세워서 한 칸짜리 물 쓰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부엌이라기도 뭣하고 뒷방이라기도 뭣한 그 공간이 마치 문 열어 놓은 냉장고처럼 온 가게에 냉기를 착실히 공급해서 가게 안 인데도 하얀 입김이 날 정도로 추웠다.
난로도 그 근처나 조금 온기가 돌뿐 네모난 가게를 뺑뺑 돌아도 종일 앉아 있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추웠다.
물도 얼고 손님도 얼고.
나는 당분간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월세가 싼 가게였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전화위복이라고. 그렇게 들어앉아 봄을 기다리는 몇 주 동안 손님 언제 오나... 그 걱정 내려놓고 내가 하고 있는 장사에 대해 곰곰 숙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골동 가구 골동 소품이라는 것이 정상가가 없는 물건이다 보니 도매상이 나에게 주는 가격도 자기 기분에 따라 들쭉날쭉. 내가 손님한테 파는 가격도 들쭉 날쭉이었다
게다가 몇 개 팔았다고 신나서 뿌르르 도매상한테 달려가서는 내 매출 이상의 돈을 쓰고 돌아오기도 하고 도매상 눈치 보며 엉뚱한 물건을 떠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맘에 안 들게 갖고 온 물건은 당연히 오래도록 처졌다.
나도 정이 안 가는 물건은 희한하게 잘 팔리지도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진이 많으면 깎아도 팔고 뒀다가도 팔고 부담이 덜 할 텐데 도매상이 한껏 마진을 챙겨 먹고 나한테 넘긴 물건들이다 보니 내가 소매로 팔 때는 내가 봐도 너무 비쌌다.
2000년대 초반은 지금보다는 경기가 좋았지만
원도매 중간 도매가 2중 3중으로 마진을 남겨먹을 만큼 손님들이 어리숙하지 않아서 응당 받아야 하는 가격을 불러 놓고도 자신이 없어서 손해를 겨우 면하는 가격을 다시 고쳐 부르고 이러기를 반복했다.
내가 자신이 없으니 손님도 여기는 떼다 파는 물건이라 이렇구나... 눈치채는 것 같아 더욱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어디서 그 물건들의 원가를 듣고 사러 온 사람들처럼 손님들은 그 물건의 도매가격을 귀신같이 꿰뚫고 있었다.
내가 앤틱을 잘 몰랐던 건지. 유럽 골동품이 워낙 특수한 고객들의 물건이라 그 사람들이 시장 가격을 더 잘 아는데 내가 어쭙잖게 분당에 앤틱을 소개한다고 건방을 떨며 바가지 잔뜩 쓰고 바리바리 들여와서 결국에는 마진도 못 먹고 원가에 정리하고 있었던 것인지
여하튼 100에 사 온 가구는 이리 깎이고 저리 떼이고 결국 내손에 정말 딱 100만 원의 돈만 남겨주고 용용 죽겠지 떠나갔다.
그런 해괴한 경험을 몇 번하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이태원이고 어디고 국내 도매 딜러를 통해 물건을 들여올 엄두가 안 났다.
앤틱 샵이라고 간판까지 커다랗게 달아놨는데 이제 와서 물건 해올 곳이 없다고 갑자기 다른 장사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고민이 계속되었다. 당시만 해도 앤틱을 해외에서 구매할 수 있는 루트를 아는 것 자체가 앤틱 업계에서 내가 어떤 위치를 점할 수 있는지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이 상황은 많이 나아지지 않아서
내가 지금 만나는 소매상인들도 나도 영국 가서 물건 하고 싶은데.... 어디 부탁할 데도 없고...
이 말을 자주 한다.
당시에 나도 비슷한 이유로 내가 직접 수입을 하고 싶었다.
처음 나한테 물건을 주었던 언니가 나니까 이런 물건 자기 주는 거야. 내가 다 소매로 팔면 그 돈에 몇 배는 벌걸? 그런 걸 자기가 하도 애쓰는 게 기특해서 내가 밀어주는 거야. 내 은혜 잊으면 자긴 사람도 아니다. 나 믿고 나한테 물건 3년만 가져가 내가 나중에 영국 가서 물건 하는 노하우 좀 알려줄게. 그때 까진 내가 밀어줄게. 마치 거저 주는 것처럼 수천만 원어치 물건을 내 작은 가게에 밀어 넣고 떠난 지 6개월 만이었다.
미안하지만 그 뒤로 그 언니한테 다시 물건을 하는 일은 없었다.
특이한 업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유럽 앤틱 가구점 주인들도 알음알음 서로 다들 친한 경우가 많고 옆집 숟가락 개수 까지 다 아는 시골마을처럼 소문이 빨랐다.
어느 집이 요새 대박을 치네. 어느 집 인물 좋은 딸내미가 아빠 따라 샵 차렸네 어느 집 실장이 즈이 사장 출장 간 사이에 옆집 사장이랑 바람이 나서 단골 다 데리고 옆집으로 옮겨 앉았네. 누구 집은 손님이랑 거울 들고 오만 원 더 내놔라 못준다 옥신각신하다가 그걸 널쪄서 주인장 발목이 아작이 났네.... 여자들끼리 모인 장사답게 전화로 구전으로 입과 귀가 쉴 새가 없었다.
그 사이 간간 그 언니 소문은 들었지만 내가 선 듯 연락하지를 못했다.
초보때 나한테 물건을 비싸게 팔았다는 꽁한 마음이 오래도 갔다.
몇 년 후에 나도 장사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차츰 그때 그 언니도 그냥 자기가 받을 금액을 받고 자기 장사를 한 거지 나한테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쁘게 팔아먹은 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지사지라고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그 언니를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장사라는 것이 한 가지 켯속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입장과 사정이 다르다 보니, 그 입장에서는 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철든 생각이 들기까지 참 세월이 오래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