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22
당시 내 매장은 분당 서현에 있었다.
처음에는 30평 공간도 넉넉할 줄 알았는데 막상 도매가 늘어나고 출장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웬걸. 금새 매장 입구 목구멍까지 물건이 늘어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다가 물건 마당에 내놓고 퇴근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언덕 넘어 신현리에 창고를 따로 얻게 되고 점점 샵보다는 창고 중심으로 장사가 이루어졌다.
매장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창고에서 물건 정리하고 바로바로 출고를 시키는 일이 많아졌다.
월세만 많이 나가고 효율은 떨어지는 이 매장을 어떻게 할꼬... 궁리에 들어갔다.
앤틱 카페 컨셉으로 커피도 팔고 앤틱도 파는 매장으로 다시 꾸미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앤틱 카페로 다시 꾸미려면 돈도 좀 들고 내가 커피나 소소한 케익류등을 굽든지 사 오든지 좀 귀찮아지겠지만 영국 앤틱센터들에 가면 꼭 있는 티룸 형태의 우아한 커피숍을 꼭 해보고 싶었다.
영국인들의 취미생활 중 하나가 앤틱 헌팅이다.
젊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년의 부부나 자그마한 소품들이 잘 보이기나 할까 싶은 파파 할매 할배들도 심심산골 한중턱에 떨어진 앤틱센터까지 비까지 추적거리는 쌀쌀한 날씨에 굳이 차까지 몰고 와서 혹시 건질만한 앤틱 빈티지가 없나... 둘러보고 다닌다.
너무 조용해서 이 센터에 나 혼자 있나... 한적한 앤틱센터를 둘러보다가 어느 코너에서 조용히 스윽!! 나타나는 백발 머리에 입술만 빨갛게 바른 영국 할매를 보고 세상 식겁 놀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먹고살만하다고 해야 하나... 한가로운 좋은 취미라고 부러워해야 하나.. 여하튼 그렇게 호젓하게들 산책 삼아 쇼핑 삼아 앤틱 샵들을 돌아다니는 영국인들이 많다.
한참을 앤틱 창고들을 뒤지고 다니면 출출하기 마련이라 앤틱 창고들 한 구석에는 꼭 간단한 차와 다과를 먹을 수 있는 커피 룸이 마련되어 있다. 뭐 대단히 화려하진 않지만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들이다.
예컨대 나도 그런 앤틱 카페를 차리고 싶었다.
건축사인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실 엄두가 안나는 일이었다.
빠 형태로 주방 시설을 다시 해서 넣고. 커피 기계도 사서 넣고 나름 커피 기술도 배우고 레스토랑 하는 선배 언니한테 부리나케 속성으로 치즈케이크 굽는 법도 배우고.,
머릿속에 구상 중인 모양이 하나하나 만들어져 갔다.
인테리어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친구가 휴게음식점으로 영업하려면 허가도 받고 주인장이 보건소 가서 병이 없다는 증명서도 내고. 요식업 교육도 받아야 한다고 그런 것도 모르고 일을 벌였냐고 세상 멍청이 나무라듯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뭔가 허가증은 필요하겠지 했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아... 그래. 하기는 먹는 것을 다루는 곳이니 그 정도 귀찮음 쯤이야..
맘먹기 어려워서 그렇지 이왕 나선길이니 다 해치워야지.
그 길로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수원인가 어딘가. 지금은 온라인 과정으로 대체된 요식업 관련 교육 이수를 그때는 멀리 지정된 교육장까지 찾아가서 하루를 꼬박 앉아서 그 지루한 내용을 다 듣고 무슨 시험까지 봐야 했다. 그다음에 보건소 찾아다니고 등등의 일들은 차라리 덜 힘들지 않았나 기억될 정도로 그 교육은 참 지루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니 저러니 해도 듣거나 가거나 하기만 하면 다 처리되는 과정들은 사실 괴로운 것도 아니고 진짜 난관은 관에서 내주는 허가들이다.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나는 이후에도 관에서 처리하는 허가 과정들에 참 불합리한 것들이 많다는 걸 여러 번 느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이때 건물이 구조적인 문제로 앤틱 카페를 결국 열지 못했다.
소소하고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면서 한편으로는 가구점으로 운영되던 샵에 커피를 파는 업종을 추가하려 했고. 같은 라인에 있는 대부분의 1층 매장들이 다들 식당이니 커피숍이니 이미 운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건물만 특별히 안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었다.
그런데 내 매장에 휴게업을 추가해주기 위해 현장 확인을 나왔던 공무원 얘기가
지하에 불법사항이 있기 때문에 그걸 원상회복을 해야 내 매장에 업종을 추가해 줄 수가 있단다.
당시 우리 매장 지하에는 낮에는 영업을 안 하고 밤에만 술을 파는 조촐한 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나랑은 영업하는 시간대가 달라서 마주칠 일도 없고 사실 거기가 영업을 하는지 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원래 방공호인지 대피소인지 건축물대장상으로는 그런 영업집을 넣으면 안 되는 데라나 뭐라나
옆에 다른 건물들도 지하를 비워뒀다는 소리 못 들었고 실제로 다들 술집이니 커피집이나 운영들을 하고 있는데 뭔 소린가.
눈치를 채고 보니 다들 암암리에 불법으로 방도 넣고 가게도 넣고 그렇지만 누가 특별히 고소하고 그러지 않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너도 불법 나도 불법 다들 사이좋게 그렇게들 산다고 했다. 새로 가게가 바뀌어도 기존의 업종을 인수하는 형태가 많으니 그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나 보았다.
나 커피 몇 잔 팔자고 주인한테 장사 잘하는 지하 매장 내쫓으라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래도 주차자리 많이 쓴다고 미운털이 박혔는데 그런 요구까지 했다가는 너 죽고 나 죽자 한바탕 난리가 날게 틀림없었다.
깨끗이 포기..
아... 뭐 대단한 거 팔 것도 아니고.
커피 몇 잔이랑 케키 몇 조각 팔겠다는데.
이거 하자고 보건소 가서 남한테 옮기는 병 없다고 별 휘한한 검사까지 다 받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요식업 교육까지 다 받고 그 공을 들였는데
마지막 휴게음식점 허가 단계에서 태클이 걸리다니.
분하고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법이 그렇다니 어쩌겠는가.
억울한 마음에 이왕 시설까지 했으니 가구 보러 오는 손님들한테 근사한 빠에서 커피도 내려주고 굽기로 마음먹은 길에 동네방네 냄새 뿌려가며 치즈케이크도 구워서 나눠주고. 한동안 애를 썼지만 영 신이 안 났다.
돈도 많이 들었는데.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한 번씩 사장이 다른 일에 혼을 빼고 있으면 알게 모르게 장사의 흐름이 끊겨서 오래도록 원래 하던 사업에 타격이 크게 된다. 당시에는 못 느끼지만 연간으로 따지거나 분기별로 매출 흐름을 살펴보면 장사 안되던 시기랑 내가 딴 데 마음 뺏긴 시기랑 희한하게 겹쳐서 떠오르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때 알았으면 그러지 말걸...ㅠㅠ 그러나 그때는 그게 살길인 줄 안다. 아... 사업의 재수 없음이여...
언짢은 일이 일어날라니 여러 가지가 겹쳐서 오는 것이
한날은 가게 앞에 내놓은 물건들을 도둑맞는 일도 있었다.
나도 매장 안에 있는데 대담하기도 하지.
당시 매장 앞에 장식 삼아. 간판 대용 삼아. 이런저런 앤틱 소품과 큰 청동 항아리며 다채로운 색감으로 동네 꼬맹이들한테 인기깨나 있었던 영국 앤틱 목마 등등을 내놓았었는데 누가 대낮에 그걸 홀랑 들어가 버리는 일이 벌여졌다.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내가 버젓이 안에 있고 사람들이 들어올 수도 있는데 무겁고 큰 물건들이니 들고뛰지는 못했을 테고 아마도 차까지 대놓고 그걸 다 들어간 것 같았다.
정이 떼려니 별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생각하며 이제 서현 매장을 슬슬 정리해야 하나보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