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24
언젠가 리빙 소품 수입을 위해 인도 자이푸르 지역을 방문했을 때다.
인도 자이푸르는 영화 ‘김종석 찾기’라는 멜로 영화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도 참 친근한 인도 도시중 하나다.
인도의 도시가 우리 드라마나 영화에서 로맨틱하게 그려지기가 쉽지 않은데 영화에서는 엄청 이쁘게 나왔다.
실제 가 본 경험으로는 어마나 세상에... 나는 인간과 개와 코끼리가 그렇게 가까이 어울렁 더울렁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거기서 처음 알았고 내가 여직 알던 '위생'의 개념이 쓸데없이 거창한 것이었다는 것도 거기서 알았다.
도력이 높은 도인을 따로 만나지 않아도 거기서 며칠 사니 이미 열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달 더 살면 법륜스님이나 명진스님처럼 구름관중을 몰고 다닐 아우라를 얻을 것 같았지만 그전에 내가 죽을 것 같았다. 뭣 때문에 죽을 것 같은지도 분명치 않지만 인도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나는 너무 벅찼다.
여하튼.
어찌어찌 연줄이 닿았고 거기에 가면 예전 영국 식민지 시절의 남겨진 가구 소품도 많고 그걸 이용해 새로 만든 인테리어 장식품들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떠난 길이었다.
잘 기억도 안 날 만큼 길게 여기저기 거치고 거쳐 어렵게 공장인지 창고인지 아무튼 정보에서 알려준 업자를 찾아가긴 갔는데 턱 하고 매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 왔다.
장사꾼의 촉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어떤 물건을 보거나 그걸 판매하는 장소에 들어서면 벌써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대박 상품’의 아우라를 감지한다.
전체적으로는 뭐 나쁘지 않은데 하나하나 뜯어보고 구석구석 살펴보면 어쩐지 허술하고 고객한테 바로 내놓기 애매한 그런 물건들이 있다.
아... 이런 거 괜찮네 이국적이고 소품으로 나쁘지 않겠다... 하다가도 근데 좀 위험하지 않아? 너무 취향 탈것 같은데... 하는 물건들이다.
인도는 오랜 영국 식민지를 겪으며 영국 사람들이 남겨놓고 떠난 가구나 타일 등이 많은데 그걸 이용해서 거울이나 장식품 등을 새로 만들어서 판다고 했다. 타일 자체가 이쁘장하니까 그걸로 거울이나 생활 소품을 만들어 놓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 타일 자체가 앤틱이다 보니, 그걸 조각조각 잘라서 만들어 놓은 디자인이 다 제각각이었다.
물건을 수입해서 파는 일을 기획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많은데
중요한 체크 포인트 중에 하나가 연속성과 동일성. 그런 것 들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항상 출장을 나와서 물건을 들고 갈 수 없으니. 전화나 이메일로 오더를 넣더라고 지난번 물건하고 똑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물건을 꾸준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도매로 물건을 공급할 때나 고객한테 소매로 팔 때 옆집 똘이 엄마랑 뒷집 깜찍이 엄마가 똑같은 것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어라? 지난번이랑 디자인이 다른데요? 하면 그건 이미 같은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인도 딜러.
배짱도 좋지.
자꾸 뭘 얼마나 살 거냐 묻는다.
당신의 아이템이 좋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다 다르니 이걸 한 장 한 장 수백 장을 일일이 고를 수도 없고 샘플만 보고 무조건 주문할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걱정 말란다. 자기가 최고로 예쁜 것으로 보내준단다.
헐..... 다시 말해 자길 믿고 거을 1000장 뭐 이렇게 주문을 하면 한 달 안에 만들어서 보내주는데 예쁜 걸로만 골라서 서로 다른 디자인을 1000개 만들어서 보내준단다.
하.... 앤틱을 뜯어서 새로 만들었다지만 이건 앤틱도 아니고 그냥 리프러덕션 새 상품인데
이걸 서로 다른 디자인 1000개를 깔아놓고 장사를 할 생각 하니 끔찍했다.
지난번 그것 이쁘던데 그걸로 주세요. 이런 고객의 요청이 번써부터 귀에 쟁쟁하다.
다른 상품도 대부분 그런 상황이었다.
빈티지 느낌이 물씬 나는 디자인들이라 맘에 들었지만 장사 입장에서는 그닥 매력이 없었다.
영국 프랑스의 오리지날 (제뉴인) 앤틱이라면 하나하나의 가격이라도 높은데 이거는 인도산 새 상품이라 이걸 어떤 말로 포장해도 높은 가격에 팔기는 어려울듯했다.
두어군데 다른 공장도 둘러보았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게다가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지의 생활용품을 들여올 때는 디테일이 허술한 점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운나라라 그런지. 원래 공산품에 대한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지. 그쪽 사람들은 작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귀퉁이가 좀 허술해서 이 부분은 어떻게 해줄 거냐고 물으면 자기 옷에 쓱쓱 문대서 대충 거스레미를 없애고 히죽이 웃으면 나한테 다시 내민다. 어쩌라고... zz
이런 경험이 반복되니 아쉽지만 일단 수입은 보류하고 철수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돈과 준비를 했던 출장이었는데 아쉽고 아까웠다.
하지만 비슷해 보여도 영국 앤틱과 인도 물품들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
어정쩡하게 섞었다가는 위아더 월드. 세계 만물상이 되어버리기는 일도 아니다.
내 나이 60 이전에 그 컨셉으로 가게를 차리기는 좀 싫었다.
여하튼 인도 출장은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빈손으로 돌아온 경험이었다.
많은 사갈 줄 알았는데 욕심껏 팔지 못한 게 아쉬웠던지 그 첫 번째로 들렀던 인도 상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전화해서 새 상품 나왔다고 사진 보내주겠다고 나를 졸랐다.
마음은 고맙지만 상품은 사양하고 싶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동남아나 인도 등지의 상인들은 의외로 뼛속까지 장사꾼이라 싫다는 소리도 둘러서 말하면 못 알아듣고 자꾸 다른 사진을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 때로는 아주 직절적으로 나는 당신의 상품이 싫습니다 라고 정 떨어지게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참 하기 싫은 일중에 하나다.
그렇게 전 세계를 무슨 박물장수처럼 이리저리 상품을 찾아 떠돌아다니다 보면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하나는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물건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
그리고 그 무궁무진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대박 날 것 같은 아이템을 찾기가 참 쉽지 않다는 것.
물론 돈이 아주 많아서 내가 수입한 아이템이 대박 날 때까지 꾸준히 뿌리고 다니면 언젠가 대박이 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가 공 들인 그 물건이 대박 나기 전에 내 돈이 끝나던가 내 명이 끝나던가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