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 분투기 25
여하튼 나는 애면 글면 유럽에서 들여온 물건들로 야금야금 장사를 잘해서
2006년 2007년 계속해서 년 매출 5억 이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날도 있었나... 싶다.
자영업의 인생은 어느 한중턱을 잘라보면 침체기이고 어느 한중턱을 자르면 성공기이다.
장사 잘 되던 시절을 털컥 잘라 나 자신을 돌아보면 분명 성공했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쩔 텐가. 그래 봤자 과거이고 다양한 중턱 중에 하나였을뿐.
여하튼
당시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년 매출 10억은 곧 할 수 있을 듯했다.
결국 년 매출 10억은 하지 못하고 앤틱 사업을 접었지만 당시에는 아... 장사라는 게 이런 맛이구나. 했었다.
남편이 가끔 도와주는 것 이외에는 딱이 직원도 없이 나 혼자 올리는 매출이었으니 신경 쓸 것도 없고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한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MBN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내가 마케팅을 배우려고 일주일에 한 번 시내에서 그룹스터디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거기의 마케팅 이사를 통해서 ‘성공한 여성 ceo'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다른 여사장님들도 이미 출연을 했고 다른 목적보다도 장사에 도움이 되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얼른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전화가 오지만 어디 어디 방송인데 테이프 값만 주시면 다큐를 제작해드리겠다고. 테이프 값이 얼마인데요? 700만 원입니다. 이런 방송 아닌가... 의심했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40분짜리 다큐여서 며칠에 걸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우리 창고에 와서 촬영하는 날에는 제법 장비도 많이 들어오고. 내가 움직이는 동선과 리포터와 나눌 대화까지 미리 다 원고에 나와있어서 나는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미리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화상으로 듣고 그걸 토대로 대화 형식의 원고를 써서 온 정성도 인상적이었고, 이런 작은 프로그램에도 이렇게 많은 공이 들어가는구나... 싶었다.
현장 촬영이 이틀 동안 진행이 되었고 며칠 후에는 내가 스튜디오로 초대되어 사회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도 활영을 했다.
시내에 있는 방송국도 처음 가봤고 신부화장 이후에 처음으로 남한테 얼굴을 맡기고 화장도 받았다.
옷은 내가 준비한 옷을 입고 넓은 스튜디오 강한 조명 아래 앉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실수만 하지 말자... 떨지 말자 애썼지만 타고난 무대체질인지 너무 뻔한 질문이라 얼 것도 없었던 건지 두 시간 정도의 촬영 내내 편안하게 종알종알 말도 잘하고 설명도 잘했다.
누가 들어주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모두는 각자 내 얘기는 기가 막히게 할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너 장사 잘한다며 니 얘기 좀 해봐. 이거니까.
그냥 들입다. 내 자랑을 하면 되었다.
이것처럼 쉬운 게 어디 있을까.
방송은 한 달쯤 더 있다가 나왔다.
신기했다.
화면 속에 나는 나 같지 않았고
활짝 웃는 것도 아니고 시무룩한 것도 아니게 비적비적 웃는 내 모습이 너무 바보 같아 보여서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 저 여자가 저런 사업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이 주제였기 때문에 방송을 본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거의 나 혼자 하다시피 하는 사업인데 매출 규모가 의외로 큰 것에 사람들이 많이 놀랬고 직원 없이 창고에서 하니까 마진도 높겠다 싶었는지 와... 돈을 쓸어 담는구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지.. 그때 그렇게 벌었다고 지금에 사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누군가 그러던데 사업이란 어차피 그때 벌어서 그때 쓰는 것이다. 차사고 여행 다니고 그랬으니까 되었지.
나중까지 남는 재산은 부동산으로 불리는 것이라나 뭐라나.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니 아... 그 말이 맞나 보다.. 싶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당시에 누릴 만큼 누렸으니까. 전체적인 인생으로 보면 즐거운 시절이었고. 열심히 번 덕에 그런 시절 누렸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니 되었다 싶은데 이런 도 닦는 소리도 스스로 위로하려고 이러는가 싶어서 씁쓸할 때도 있다.
아는 지인을 통해 어떤 사업가가 바인스 앤틱과 바이어인 나 이바인을 통째로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지인은 어릴 때 교회를 같이 다닌 친구였는데 어느 날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뜬금없이 전화가 오더니 나를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장사하는 집이니 누구라도 못 만나랴 싶어서 당장 오라고 했고 친구는 마치 동네에 있다가 문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금방 도착했다.
열심히 나를 찾아온 이유인즉슨.
지금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회장님이 이쪽 유럽 앤틱 사업에 관심이 많아.
그런데 그 어른 사업하는 스타일이 쩨쩨하게 하지 않고 투자도 왕창 하고 사업을 제대로 벌이는 스타일이라고 그런데 막상 앤틱 비즈니스를 하자니 너무 생소하고 정보가 많지 않은 분야라 기존의 사업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그 분야를 맡아서 운영해주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요약한즉. 바인스 앤틱을 그 사람한테 넘기고 나는 바이어 겸 총괄 매니저직으로 들어오면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m&a 인수합병 제안이었다.
거창하게 말하니까 참 웃긴데 당시에 그 친구도 이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하고 딱 사기꾼의 접근 방식이라는 느낌이 드는지 자기도 말하면서 비실비실 웃었다.
야!! 나 돈 없어. 어디서 사기를 칠라고 ㅋㅋ 밥이나 먹고 가라.
당연히 웃기는 소리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넘아가려는데 친구는 진실로 진지했다.
자기 명함을 주면서 자기도 이런 얘기 너한테 와서 하게 될 줄 몰랐다고 인연이 신기하다면서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그 친구가 당시 다닌 회사가 성인 오락실을 운영하는 본사였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매일 들어오는 현금과 이득금이 어마어마한데 그걸 그냥 돈으로 쌓아두면 거의 다를 세금으로 넣는단다. 나도 세금 내는 사람이니 너무나 잘 아는데 이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세율상 성인 오락실의 이득금은 그냥 놔두면 그냥 다 세금이다.
이 세금을 피하려면 수익의 많은 부분을 다른 사업에 재투자를 해야 하는데 골동품이나 미술품이 그쪽으로 맞춤한 아이템이란다.
너 우리나라 기업들이 왜 미술관 하나씩 키우는지 알아?
아... 그랬구나. 그래서 대기업 딸들이 다들 미술 관장하는구나.
근데 왜 미술품이지? 하고 많은 사업 아이템 중에 왜 다 들 아트센터일까?
물을 것도 없었다. 이런 것들은 '정가'가 없는 아이템이다.
미술작품이나 골동품. 오케스트라 공연비용 이런 것은 그야말로 정해진 가격이라는 게 없으니까 너랑 나랑 입만 잘 맞춰두면 탈 날 게 없으니까 절세용으로 그런 사업을 하나씩 차려놓는 거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그 회장이란 사람. 평생을 이런 검은돈에만 매달려 사느라 자기도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뭐 조 고급스러운 일을 해보고 싶다나 뭐라나. 그것도 참 이해가 되고 말이 되는 이유였다. 우리 인간 모두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니까. 얼굴 한번 보지 않은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지고 옆에 있다면 그동안 고생했다고 등한 번 쓸어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근데 사람이 희한한 게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아. 이 제안은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앤틱을 누가 살까 15- 달라는대로 주겠다. 통큰제안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