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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Dec 30. 2015

어쩌자고 사마란치

년말이다.      

2015년이 ‘또’ 저물고 있다.      

어제 저녁에 큰녀석이랑 둘째 녀석이 ‘응답하라 1988’ 얘기를 한참 떠들다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그 드라마 안봐? 아빠가 딱 엄마때 얘기라 그러던데?

88올림픽때 엄마 몇학년때이었어? 올림픽 기억나?‘

‘와...진짜? 엄마 다 기억나? 와...엄마 진짜 옛날 사람이구나...’     


아이들은 엄마의 나이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얼마나 ‘늙은’ 사람인지 

얼마나 옛날 일까지 겪고 기억하고 있는지 그게 궁금한 눈치다.      

올림픽이라는 ‘석기시대’ 사건을 즈이 엄마가 ‘몸소’ 체험까지 했던 사람이라는게 

놀랍고 황당하겠지.


이 녀석들에게 엄마는 사실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그 올림픽이 사실 ‘바덴바덴’에서 낯선 도시에서 

사마란치라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늙은 할배가 ‘서울’을 ‘쎼울’이라는 희한한 발음으로 

읊조리고 그 순간 전국민이 환호했었다고 사실 그보다 더 먼 시절도 기억 난다고 그러면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88올림픽때 난 고 1이었다. 

우리 학교가 테헤란로 선릉역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덕에 그 동네 몇몇 여고의 다른 학생들과 우리는  올림픽 내내 이런 저런 ‘행사’ 에 많이도 불러다녔었다.      

학생중 키가 크고 얼굴이 이쁘장했던 아이들은 이른바 ‘메달걸’로 차출되어 올림픽 내내 고운 한복 떨쳐 입고 쟁반들고 고생들도 많이 했지만 나는 몸도 퉁실하고 얼굴도 별로였던 덕에 그 역할에선 패스. 

친구들은 메달걸 해주고 즈이들이  입은 한복을 선물로 받았다.

한복이 몸에도 안 맞고 싸구려라고 꽤나 투덜들 거렸었다.     

우리 못난이들은 대신 여기 저기 손님 별로 안드는 인기없는 종목 자리채워주는 역할을 열심히 했고 경기장 가는 날엔 학교 출석으로 쳐줘서 그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거진 30년이 다 되어가는 일들이다. 

솔직히 그 3년전에 펼쳐졌던 85년 아시안 게임도 똑똑히 기억이 나고

82년에 있었던 굵직굵직한 일들도 어쩐 일인지 대충 다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엄마가 꽤나 늙은이라는 사실만 확인을 하고 휘릭 자리를 떠나버렸고 

혼자 남겨진 나는 계속 과거의 기억 속에서 휘비직휘비적 돌아 나올 줄 모른다.     

초롱초롱하고  사분사분한 딸래미라도 있으면 걔 붙들고 엄마가 말이야...하면서 이야기라도 풀어 놓으면 좀 기분이 덜 쓸쓸할텐데 이 무심한 아들놈들은 ‘와 엄마 겁나 늙었다...!!!’ 비수같은 폭언을  방자하게 꽂아놓고 가버렸다.


엄만 느이들이 겁난다. 뭐가 겁나 늙었냐...

엄마도 느이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젊음의 DNA로 탱글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으이그...


그래 어려서 좋겠다. 

그 어린 시절을 소중히 즐겨라.     

지금은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또렷한 지금의 느이의 그 시간들이

그 자체로 빛나고 행복한 축복인 것을.

그래 어찌 알겠니

그걸 언젠가 아쉬워 하게 되리란 사실조차 눈치도 채지 말렴

그런 스산한 기분따위는 너희 인생에 끼지도 말게 되기를 엄만 바래고 또 바랜다.

세상 가장 마알도 안되는 욕심꾸러기처럼 엄만 그걸 바란다.

느인 그저 그냥 그렇게 마냥 젊기를.

행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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