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Jan 14. 2022

마스코트도 늙는다-1.

마스코트 은퇴 시기에 대한 거국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나는 아들 셋을 낳았다.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셋째를 임신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이고.. 이제 딸 낳아야지. 였다.      


아들 둘을 양손에 잡은 배부른 아줌마한테 사람들은 정말 온 지구인이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말을 한다.

찬바람 쌩쌩부는 겨울에는 아이 추워.

땀이 뻘뻘 나는 여름에는 아이 더워라고 말해야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이건 전 지구. 아니 전 우주적인 묵계다.      

이제 딸 낳아야 지?     


네. 알겠습니다. 딸을 낳겠습니다.

마치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를 외치듯이

마음속으로 딸 하나요. 주문을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들을 낳았다. 또.     

나는 기뻤다.

너무 기뻤다.


주문이 틀렸다.

난 아들을 낳았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로.

지구인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왜일까. 난 왜 '또' 아들을 바랐을까.

스스로에 궁금했었다.


결론은 자연스러웠다.

나는 또 다른 나를 하나 더 세상에 만드는 게 싫었다.   

나는 삼 남매의 막내다.

오빠 둘에 딸 하나.

열 살 차이 나는 큰오빠와 세 살 차이 나는 오빠.

오빠만 둘이 있다.

내가 절대 우리 막내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자리.

막내딸.  그 자리.     

그래서였다.



 사람들이 딸을 낳으라고 불룩한 내 배를 향해 합심으로 주문을 외워주실 때

사람들에 눈동자에 동그랗게 떠오르는 삼 남매의 영상 안에

막내요 딸인 그 아이의 모습은 딱 정해져 있다.     


결코 무뚝뚝하거나 뚱하거나 심술궂거나 그런 아이가 아니다.

똥머리를 묶든 뱅헤어를 하든 얼굴 생긴 것과 관계없는

어쨌든 귀여운 모습으로 무장하고

뱃속부터 갈고닦은듯한 극한의 애교로 온 가족을 녹인다.

엄마 아빠와 두 오빠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하루치의 비타민을 먹이듯

행복감을 선사해야 하는  하늘이 주신 임무가 있다.  

   

모든 집이 그랬던 건 아니었겠지.

지금은 더 그렇지만 그 시절엔 70년대 그 시절엔

지금보다 각자의 자리에 대한 의무가 살아 있던 시절이었다.


대한뉴스 끝머리에 밑도 끝도 없이 웃어대는 건강가족 홍보영상이 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던가. 분식이 최고다 라던가.

거기에 역시 밑도 끝도 없이 깔깔대는 꼬마 아이는 대부분 여자 아이였다.

옆에 서있는 오빠들은 멍청하건 뚱하건 못생겼건 상관없지만

노란색 병아리 같은 원피스를 입고 천지사방을 뛰어다니는 꼬마 여자아이는 반드시 귀여웠다.

줄창 귀엽게 깔깔거리는 건 마스코트의 제1의 임무다.     

마스코트는 못생기거나 뚱하면 안 된다.

그림이 망쳐진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각자 자기가 생긴 대로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 권리를 누리는 건 아니다.

첫째들이 억울한 듬직이의 역할을 평생 짐처럼 지고 살아가야 하듯이

막내딸. 특히 오빠들만 있는 집에 터울 많이 나는 딸로 살아간다는 건

억울한 마스코트 노릇을 평생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태어나 보니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서 웃지 않고 뭐해?

이제 노란 원피스를 입혀줄 거야.

너는 그걸 입고 동네방네 뛰어다녀야 해.

깔깔 웃는 거 잊지 말고. 그리고 반드시 귀여워야 한단다.

찡그리거나 울지 말고. 알았지?     

그런데 어쩌나. 나는 그런 재주가 전혀 없는 무뚝뚝한 아이였던 것이다.

된장국을 끓여 놓고 라자냐 맛이 나기를 바라고

맹물 들이키면서 콜라맛이 나기를 바라듯이.

가족들은 말도 안 되는 기대를  잔뜩 안고 날 빙 둘러쌌다.

사랑이 담겼으니 그나마 시선은 따뜻했던 것 같다.


옳지 잘한다. 옳지 잘한다.  

가족들의 부추김에 신이 났던 것도 같다.

그 된장국은 기를 쓰고 라자냐 흉내를 냈다.

지가 짜낼 수 있는 최대한의

깔깔을 끌어 모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느라 죽을 애를 썼다.     


흉내도 최선을 다하면 나름 자리를 잡는지

하다 보니 할만해졌지만 그 가짜 흉내가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항상 버거웠다.     

나도 이제 갱년기를 시작하는 나이 49살

진짜 마스코트도 이쯤 되면 은퇴할 나이인데.

가짜 마스코트인데 오죽하랴

마스코트가 늙었다.

가짜가 늙기까지 했으니 그 노릇이 죽을 맛이다.     


어제는 그 죽을 맛이 대환장 폭발을 한 날이었다.          


2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엄마 다리는 두개. fea 아줌마 푸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