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는 길을 두 번 놓쳤더니
평소 못 보던 이름의 IC를 만났다.
'안녕 IC?'
녹색 표지판에 쓰인 흰 글자 '안녕'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
하며 혼자 웃었다.
아이들이 내 키를 넘으면서부터
동심은 어른이들에게만 남아 있다.
차 안에는 혼자 재롱떠는 엄마에게 적당한 호응의 의미로 조금 웃음이 번졌다 사라졌다.
소리 내어 말한 다음 사라진
안녕.
매일처럼 쓰면서 한 번도 곱씹어보지 못한
쉬운 말이 입 속에 계속 남았다.
나무 책상에 드러난 옹이에서
굳이 얼굴 모양을 찾아내는,
하찮은 것에 대한 집중력이 꽤 좋은 내가
그동안은 왜 저 두 글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 같은 예의는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숨은 계약일지도 모른다.
아직 친밀하지 않은 우리가 되기 전,
맨 살이 닳기 전에 덮어두는 얇은 천 같은 것.
오래 함께 했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친구를
괜히 한번 불러본다.
'친절한 예의씨'
나의 인간관계를 친밀도를 기준으로 나열해 보니
관계의 스펙트럼이 드러난다.
조건 없는 수긍을 주고받는 매끄럽고 불편한 관계부터
듣고 싶은 말보다는 들어야 할 말을 해 주는 관계까지.
친해지기 전에는 예의를 두꺼운 옷처럼 껴 입고,
친밀도가 올라간 관계에서는 두터운 예의는 땀띠 나는 물건이 된다.
"요즘 입이 달달한가 봐. 살이 왜 더 쪘어?"
라는 절친의 무례한 팩폭에
"나 정도 예쁘면 살은 좀 더 쪄도 된다."
하는 더 무례한 대답으로 돌려주어도 되는 사이에는
털옷 같은 예의를 벗어 손에 들고 만나기도 한다.
관계도 계절처럼 덥고 추운 날이 번갈아 오고,
어제는 괜찮던 말이 오늘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절친 사이에서도
두꺼운 예의를 서로 입어줘야 할 계절도 있다.
내 몸이나 마음에 여유가 없어
상대의 온도를 가늠할 수 없을 때
그냥 안녕한지를 묻는다.
친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괴로운 거울.
안녕이라는 말도 그렇다.
만나자는 뜻인지
그만 헤어지자는 뜻인지
발음만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예의는 늘 이렇게 두 얼굴이다.
나는 지금 예의를 갖춰 입은 계절인가.
아니면 벗어 든 계절인가.
거울 속 얼굴에게 묻듯
어두워져 거울이 된 차창에
웃어 보이는 얼굴을을 비춰본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