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난
언젠가부터 툭 하고
링크가 걸린 메시지가 하나 온다.
상당히 내 취향인 옷이나 신발, 소품 같은 것들이다.
처음에는 동생의 이런 카톡 메시지에 불신 가득한 칼답부터 날렸다.
[네 이놈. 보이스피싱이지! 니 내 누군 줄 아니?]
[그래 보이스피싱이다. 너는 하얼빈에서 온 장첸이니?]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의 흐름 그 자체로 비밀번호다.
애틋하지 않지만 서로의 코드를 잘 아는 건조한 애정관계, 내 피붙이가 맞다.
수십 년간의 가차 없는 패션 지적으로 쌓인 정보량이 보증하는
취향 저격의 쇼핑 링크까지 그녀임을 확신시켜 준다.
우리 자매가 처음부터 적당한 거리감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뜨거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흔한 자매들의 클래식한 전쟁의 서막,
서로의 옷을 탐하던 시절이었다.
체형도 키도 고만고만하고,
계절이 돌아오듯 포동 해졌다가 살을 빼기를 반복하는
일관된 패턴 덕에
외출 전 서로의 옷장 앞에서 포효를 하던 20대 말이다.
“옷 입고 나갈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라고 했잖아!”
공격과 수비를 교대하며 벌어지는 자매의 난은
‘빌렸을 뿐’이라는 측과 ‘사전 협의가 없음을 문제 삼는 측’의
반복된 열전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N차 자매의 난은 언제나 같은 결말을 맞았다.
오랜 열전 끝에
우리의 정신 건강을 염려한 엄마의
“이 가시내들이!”로 시작된 중재는,
결국 두 딸의 등에 매섭게 내리는
‘Mom’s 터치’로 진압되곤 했다.
결국 자매의 난은 이렇게 진압되지만
불을 뿜는 포화가 멈추었다고
감정까지 바로 정돈되지는 않는다.
열전에 이어 냉전이 시작된다.
세계사의 한 조각은
우리 집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
절대권력자인 엄마의 관심이
우리를 향하고 있을 때 분란을 만드는 것은
폭탄을 안고 불섶에 뛰어드는 일이다.
그 시점의 우리 자매는,
지난 20여 년 간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강제 휴전 이후의 프로토콜을 이행했다.
물론 냉랭해진 자매 사이의 기류를
엄마가 몰랐을 리 없다.
그저 사나운 눈꼬리로 주고받는 투닥임 정도는
모른 체해주었을 뿐.
수많은 균형의 어긋남을 알리는
총성 한 발로 깨질 수 있는
한시적인 평화가 찾아온다.
냉전 중 일기장에 쓴
쩨쩨한 분노의 다짐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독립에 드는 지출 앞에
별것 아닌 일들로 바뀌었다.
방을 따로 얻는 순간부터
화장실 가서 물 내릴 때마다
비용이 청구되는 현실 앞에서,
가끔 옷 정도 빌려 입는 동생과 한 집에서 사는 일이 뭐 그리 힘들 일인가?
살던 행성을 벗어나려면 중력을 이겨야 했다.
중력은 강하고,
내 의지는 쩨쩨했으며,
이불 안은 포근했다.
한풀 꺾인 포기자의 부드러워진 눈으로 본 동생은
그 걷는 뒷모습만으로도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너도 이불속에 있기로 했구나.’
투닥이더라도 같은 집에서
꽤 오래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시점이 이때쯤이었다.
감정소모 버튼을 끄고
거슬리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는 쪽으로 우회한 것이
오늘의 뜬금없는 동생의 쇼핑 추천 링크까지 온 것이다.
현실에 굴복해 화해와 공존을 선택한
어렸던 날의 패배가 없었더라면
오늘 우리의 돈독함은 더 얄팍했을지 모를 일이다.
지나온 길의 오답노트와 가지 않은 길 속에 숨겨진 답
훌쩍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지 못한 그 어느 시점이,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놓친 좋은 거래처가,
안목이 부족해 흘려보낸 공기업의 취직기회를 후회한 적은 많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혹은 선택할 능력이 없던 때의 가지 않은 길에 아쉬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지나온 길을 한 줄로 이어 그리면
구불구불하기는 해도
선명한 선이 하나 나온다.
그 선이 늘 정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디까지가 내가 걸어온 길인지는 말해준다.
남들도 나처럼 그 삐뚤어진 선을 걸으며 산다는
고만고만한 위안과 그럼에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만들었을지 모르는
그 순간들을 곱씹으며
나는 종종 가지 않은 길에 눈길을 던진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순간들 중에는
미숙함 덕분에,
부족한 탓에,
혹은 그저 겁이 많았던 탓에
결정하지 못한 일들이 큰 허방을 피한 일도 있었다.
재미있게도 그땐, 나의 부족함이 천만다행이었다.
서로 나이 들어 각자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부터는
해외 동포 수준의 빈도로 만나지만
차가운 온라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온라인이 대면보다 차갑다지만 우리 자매와 맞는 온도니까.
[이런 낭창한 원피스는 우린 못 입겠지? 돼지라서?]
뜬금없이 무례한 카톡이 또 울린다.
편안히 비틀린 각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