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의 셜록

by 오래된 도서관

So what?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는 날에도
종이 잔 위로 펄펄 오르는 김을
플라스틱 뚜껑으로 눌러 담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동안
습관처럼 거울을 들여다본다.

불과 네 시간 전보다 생기가 훌훌 날아가버린 얼굴과 마주한다.

'이건 뭐.. 여섯 시간 텀으로 늙는 거야 뭐야.'

엘리베이터 안은 잠시 정지된 세계다.
사람들은 벽을 보거나 거울을 보고,
가끔은 서로를 훑는다.
그리고 잠깐,
내 손에 든 커피잔에서 시선이 멈춘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라는데
나는 늘 뜨겁다.
직접 묻지 않아도 질문은 떠다닌다.
왜 뜨거운 걸?
굳이?
지금?
문이 열리자 동료가 웃으며 말한다.
“그거 보약 아닌 건 알지?”

색과 온도만 보면 보약이지.
지금 나에겐 떨어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줄
'뾰족한 수'이니 보약일 수도 있지.


오래전 그날, 오후 두 시의 셜록

오래전, 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도 내 하루의 반환점은 오후 두 시였다.

남들은 점심을 반환점이라 하지만
내 하루의 진짜 반환점은 오후 두 시였다.

탕비실 스틱커피로는 채워지지 않는 기력을
고카페인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시간.

“그렇게 마셔대면 피 대신 커피가 흐를걸?”

지갑을 집어 들고 나서는 뒤통수로
건조한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나는 손을 대충 휘저으며 시끄럽다는 신호를 보내며 내려간다.

‘지금 코피 쏟으면 커피가 줄줄 나올걸.’

그날도 커피를 들고 돌아서는데
창가 1인석 사이로 익숙한 각도로 구부정한 등이 보였다.

자주 보았지만 말을 섞은 적은 없던 동료.
옆, 뒷모습은 익숙하지만
정면에서는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눈이 마주쳤다.

그저 눈인사를 하고 지나는데 자신의 빈 옆자리 가방을 치워준다.
말이라도 걸고 나가야 무례하지 않을 이런 상황이 참 불편하다.
평소 말소리도 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의외의 배려는
배타적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나 같은 사람도 치워준 자리에
엉덩짝을 의자 끝에 살짝 걸치게 했다.

“뭐 하세요?”

그는 창밖 횡단보도를 보며 말했다.

“상상놀이요.”

사람들을 관찰하고
패턴을 읽고
요일마다 편의점에 서는 사장님을 기억하고
헤드셋을 고쳐 쓰는 여자의 직업을 추론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대리님은 매일 커피 사서 바로 나가시다가
오늘은 저한테 붙잡히신 거죠?”

C언어만 읽을 것 같던 사람의 의외의 셜록 같은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름 유니크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 내 생활 패턴은
이렇게 수월한 규칙의 코드로 읽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기분.

나는
오후 두 시가 되면 내려와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사람.

So what? 그게 뭐?
남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각자 자기 하루를 살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내 선택은
그저 취향은 개인적인 것일 뿐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날 알았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이미 반복되는 패턴으로 분류되는 특성을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한여름의 뜨아는
의지나 취향이기도 하지만
설명 가능한 특성이었다.

프로그램의 변수처럼,
정렬 가능한 값처럼.

내가 남을 판단하는 틀을 갖듯,
다른 이들의 틀에서
나도 하나의 특수값으로 분류될 수 있다.

가치판단을 비껴간 그 분류는
신선한 기분전환이 되었다.

사실 분석이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 분석 뒤에
따라오는 평가가 기분을 망칠 뿐.

그날의 관찰은
패턴을 읽는
담백한 나열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도
김이 오르는 종이컵을 들고
엘리베이터 거울을 본다.

가장 나른한 오후 두 시의 아메리카노는 오늘도 뜨겁다.

아마, 각자의 오후도.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