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추운 겨울인데!
새벽같이 학교 가는 나. 불쌍하지 않아?"
방학 내내 몸에 붙은 게으름과 아침잠을 털어내던
아이들의 투정이 상쾌한 아침이다.
"직딩은 방학이 없으니까,
새벽 기상에 적응할 필요도 없어. 부럽지?"
아직 두 눈두덩이에 잠을 올린 큰 애가 화장실로 느리게 걸음을 옮기며 말한다.
"엄마의 불행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아."
그래.
나의 불행이 너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심통으로 볼이 부은 사춘기를 세수하러 보낼 수는 있단다.
항우장사도 못 이긴다는
무거운 눈꺼풀과 싸워 이긴
개선장군 삼 남매를
교문 앞에서 내려주고 출근길에 오른다.
겨울방학 끝에 시작되는 새 학기에는 개학과는 다른 묵직함이 있다.
한 살을 더 먹고, 교실이 바뀐다.
작년의 관계가 옅어지고
새 이름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아직 겨울이 남은 바깥 온도처럼,
3월의 교실은 지난 한 해를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우고 새로 쓰는
달뜬 긴장감이 있다.
학교 다닐 때는 모르고 지나간 좋을 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이젠 더 이상 시험을 볼 필요 없는 어른이 되어,
시험이 주는 긴장감을 잊고
추억보정으로 '좋을 때'만 기억에 남기는 반칙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교복 입을 때는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하는 말의 뜻은
그저 십 대가 가진 가능성을 두고 한 말이라 생각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하지만 '3월의 지우개'처럼 미처 몰랐던 것을 문득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처럼.
내가 한 달의 쉼과 시작을 하려면,
한 달간의 급여와
쉼의 앞과 뒤로 재취업의 노고가 필요하다.
젊음이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했던 새 학기는 더 비싼 것이었다니.
또 이렇게 귀한 줄도 모르고
탕진한 것이 하나 늘었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
공짜 지우개를 가진 개선장군들을 살핀다.
그리고 몇 개 남지 않은 아이들의 3월의 지우개가
요긴한 하루이기를 바라며 묻는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