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는 초록불 아래

by 오래된 도서관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는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신호등이다.

철 따라 꽃을 찾아 나서지 않는

나에게는 말이다.


여름과 겨울은

그 뜨겁고 차가운 온도 덕에

진한 존재감을 갖지만,

점점 흐려져 가는 봄과 가을은

봄과 가을색으로 된 신호등이 있어야

계절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봄은 벚꽃이고,

가을은 단풍이다.


찬 바람틈에서도

날마다 어린잎의 색이 영글어가는 것을

하루하루 눈으로 따라가는 사람은

이해 못 할 말이지만


춥다, 덥다 밖에 모르는 회색 인간은

일 삼아 봄과 가을의 시점에

깃대를 하나 꼽아야 한다.


매번 팽이처럼 돌아오는 계절 바뀌는 게

무슨 대수라고...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나이 들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봄과 가을의 깃대를 떠올린다.


"전보다 행복한가?"


매 순간을 순발력으로 살던 중

뜬금없는 질문에

터지기 전의 팝콘 같은

벚꽃의 꽃눈 앞에 잠시 멈춰 선다.


나이 들수록 꽃에 관심이 가는 건

삶이 느려지기 때문이 아닐까?

새싹의 연두색이

쨍한 꽃잎의 색보다 예쁘다는 것도

느릿해진 속도가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초록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여유 있게 멈춰 서는 어른들을 보며

어렸을 땐

'저게 어른의 여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깜빡이는 초록불 앞에서

뛰지 않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여유'의 본질은

세월의 흐름을 타고 내려앉은

팔과 다리에 붙은 피로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깜빡이는 초록신호 앞에 선 시간이

꽃눈을 비집고 나오는

벚꽃을 보게 한다.


그리고 봄은

깜빡이는 초록불처럼

금세 사라진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