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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Nov 25. 2021

조종사가 터뷸런스를 만났을 때


내가 타는 737 비행기. 입술이 참 귀엽게 생겼다.



이따금씩 친구들이 물어오는 질문들 중 하나,


"터뷸런스 있을 때 안 무섭냐?"


이 질문을 받을 때 나는 허세에 가득 찬 대답을 하곤 한다.


"내가 무서워하면 승객은 누굴 믿고 타냐."


약간의 허세와 간지가 들어갔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터뷸런스가 심하다고 해도,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도 무섭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막말로 내가 무서워하면 정말 승객들은 누굴 믿고 타야 하나 싶기도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멀미가 없다는 것과 비슷하게 나는 비행기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터뷸런스들을 칵핏 창문을 통해 눈으로 직접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공포가 승객분들이 느끼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덜하다.


사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대개 내가 알지 못할 때 일어난다. 심적으로 대비한 상태에서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싫음이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당신은 평생 한 가지 맛없는 음식 한 가지만 먹고살게 될 것이오."


라고 말하면 그 음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두렵지만, 이내 뿌링클 치킨이 배달되고 평생 뿌링클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것은 두려운 것이 아닌, 싫은 것이 되는 것처럼.


터뷸런스도 똑같다.


눈앞에 뭉게뭉게 구름이 보인다면, 저 안에 비행기가 들어갔을 때 흔들릴 확률은 매우 높다. 그렇기에 나는 승객분들과는 다르게 이미 심적으로 대비가 되어 있다. 터뷸런스가 무섭진 않지만 대충 얼마나 흔들릴지도 감이 오고 비행기가 덜덜덜덜 떨리는 것을 이미 알고있기 때문에 터뷸런스 지역에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기장님과 나는 터뷸런스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저 구름을 피해서 강하를 천천히 한다거나, 아니면 강하 각을 일부러 높인다거나 혹은 다른 경로를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늘에는 우리 비행기 한 대만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기에, 경로를 미처 바꾸지 못하고 그 구름을 뚫고 그대로 가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조종사는 미리 좌석벨트 사인을 켠다. 뒤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객실 승무원분들과 승객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흔들리지도 않는데 좌석벨트 사인이 켜질 때가 있다면 바로 이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곧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좌석벨트 사인이 켜진 것이다.


이렇게 구름처럼 눈에 보이는 터뷸런스도 있는 반면 CAT(clear air turbulance)이라고 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터뷸런스도 있다. 서로 다른 속도의 바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이 터뷸런스는 우리의 눈에도, 비행기의 레이더에도 감지되지 않는 터뷸런스이기에 흔들리는 것을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


그리고 CAT 같은 것은 아니지만, 바람이 청소년기에  나간 아들의 마음 상태처럼 력과 방향이 미친 듯이 변화하는 터뷸런스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Windshear라고 부른다.


Windshear는 그 정도가 심할 때, 비행기가 조종사에게 육성으로 "윈드시어! 윈드시어!"라고 알려줄 정도이고, 이런 경보음이 떴다면 조종사는 랜딩을 포기하고 그대로 Go-around 절차를 수행하여할 정도로 위험한 바람이다. Windshear는 비행기가 피해야 할 터뷸런스 중 하나인데, 특히 제주 국제공항에 자주 나오는 현상 중 하나이다.


한라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제주도는 해상과 내륙의 바람의 풍속 차이로 인해 Windshear가 발생하기도 하며, 제주도 해안지형의 특성상 주변 지형, 특히 한라산과의 고도 차이가 크므로 바람의 세기가 커지면서 windshear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이상 깊게 들어가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전문적인 내용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싶은 나의 글의 성격과 맞지 않으므로 생략하고, 여하튼 결론은 이것이다.


제주 국제공항에는 Windshear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터뷸런스가 있다.



얼마 전, 기장님과 부산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을 하고 있었다.


미리 뽑아놓은 제주도의 기상은 좋지 않았고 PIREP(Pilot report)이라고 불리는 선행 항공기가 보고한 정보도 계속해서 우리 비행기로 전송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선행 항공기가 보고한 제주도의 날씨는 windshear를 포함하여 착륙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제주공항에 점점 더 가까워졌을 때 집 나간 아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처럼 흔들려대는 바람이 점점 느껴지고 있었고, 이윽고 제주 공항의 관제사의 라디오 교신으로서 그 바람이 확정되어버렸다.


"런웨이 25 착륙 허가합니다. 200 피트에서 windshear 보고되었습니다."


200피트??

200피트으????

이배애액피트으으으으?????


200피트는 어떻게 보면 조종사에게 참 중요한 고도이다.

날씨가 좋은 일반적인 날, ILS라고 불리는 정밀접근에서 200피트 상공은 조종사가 착륙을 할지, 아니면 착륙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고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도에서, windshear라니.


windshear가 발생했을 때는 착륙을 포기하고 재접근을 해야 했기에, 그와 관련된 절차를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비행기는 활주로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200 피트에 windshear가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 상태였다.


1,000피트

500피트

300피트


항공기에서 기계음으로 나오는 고도를 불러주는 음성이 들릴수록 마음의 긴장은 진해지고 있었고 마침내 관제사가 이야기 한 200피트에 다다랐을 때쯤,


"200 hundreds"


200피트의 고도를 불러주는 비행기의 기계음이 들리자마자 비행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착륙까지 20초도 안 남은 상황, 만약 바람 때문에 비행기가 불안정 상태에 들어가면 착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여 비행기의 상태를 확인하며 착륙을 할지 포기할지 기장님에게 조언을 드리기 위해 열심히 눈을 굴리고 있는데, 조종간을 잡은 기장님께서 터뷸런스에 들어가자마자 내뱉은 말씀,


"요놈이구나."


아, 정말 이런 고귀하고 품격 있는 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만 그때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를 표현하자면


'진짜 개 존멋이다...'


정말 기장님께서 개 멋있으셨다.

그리고 '요놈'을 잘 대처하시곤 착륙까지 부드럽고 완벽하게 만들어내셨다.


착륙을 하시자마자 기장님이 너무 멋있고 마음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 기장님!! Speed brakes up!!  진짜 와... 감사합니다!! Two reverse green!!!"

"바람이 끝에서 난리네 난리야 아주."



조종사가 터뷸런스를 만났을 때,

같이 일하는 객실 승무원분들과 승객분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고도나 경로를 변경하여 피해 가며 운항을 하지만, 터뷸런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자부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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