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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Nov 27. 2021

이륙과 착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이륙과 착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시정? 아니다.

바람? 아니다.

구름? 아니다.


바로,

비행기와 나와의 혼연일체 되는 궁합이랄까.

후후



는 헛소리이고,

시정과 바람, 그리고 구름이 가장 중요하다.


시정이 좋지 않으면 이륙을 할 수가 없고,

바람과 구름의 높이가 도와주지 않으면 착륙을 할 수가 없다.


내가 타는 비행기를 기준으로 활주로에 딱 섰을 때 적어도 활주로 중앙 점선이 최소 5개는 보이는 시정이어야 이륙이 가능하다.


착륙을 할 때는, 조종사가 착륙을 결심할지 포기할지 하는 고도에서 구름이 있어서 활주로를 식별하지 못하면 착륙을 할 수가 없다.


쉽게 말해, '날씨'는 조종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출발하는 공항과 도착하는 공항의 날씨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조종사에게는 실시간 날씨가 중요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직접 실시간 기상을 불러주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 공항에 있는 모든 조종사에게 관제사가 날씨를 직접 불러주는 수고를 하려면 관제사의 연봉은 지금보다 서른 두배가 올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날씨를 공시하는 방법일 것이다. 공항의 실시간 날씨를 공시해서 조종사가 그 공시된 날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이것을 우리는 ATIS 정보라고 부른다.


ATIS의 약자는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이 글을 전문성을 철저히 배제한 글이기에.


어쨌든 1시간 마다(인천국제공항처럼 어떤 공항들은 30분마다) 새로 갱신되어 발행되는 실시간 공항 날씨를 조종사는 비행기 안에 있는 프린트로 뽑든, 라디오로 듣든 하여 이착륙 여부와 사용하는 활주로 등을 결정한다.


자 그렇다면,

착륙 전, 실시간 날씨를 받아봤을 때 조종사에게 가장 부담되는 날씨는 무엇일까?


비행기를 마구 흔들어대는 windshear? 아니다.

착륙 결심 고도에서 활주로가 안 보일 것만 같은 낮은 운고? 아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활부로 식별이 불가능한 날씨? 아니다.


바로 천고마비의 계절에 바람 한점 불지 않는

WIND CALM이라고 적혀있는 기상을 받아봤을 때이다.



아, 정정하겠다. 조종사에게 힘든 날씨가 아닌, 나에게 힘든 날씨이다. 내 똥글을 읽어주시는 기장님, 부기장님들은 안 계시겠지만 혹여나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나는 윈캄이 제일 편한데?"라고 하심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변명을 조금 하고.


나는 바람이 고요할 때 랜딩이 제일 힘들다.


바람이 고요하면 비행기는 물론 훨씬 안정되고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전혀 없지만, 심적으로 너무 불편하다. 예컨대 이렇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날씨에 랜딩이 똥랜딩이 된다면 탓할 것도 없이 온전히 내 실력이... 전문 용어로 뽀록 난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많이 불면, 랜딩이 조금 부족해도 바람이 강해서라고 변명이라도 할 텐데 나를 방해하는 요소가 단 하~~~나도 없는 WIND CALM 상태에서는 내 부족한 실력이 탄로가 나버린다.


얼마 전,

천고마비의 계절,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에서

너무나도 좋으신 기장님과 비행 중이었다.


김포 공항에 다다랐을 때쯤 우리는 착륙 허가를 받았고, 관제사의 입에선 공포의 단어가 나왔다.


"32 오른쪽 활주로 착륙 허가합니다. 바람은 고요하니까 못 내리면 너 책임이예요."


물론 관제사분께서 바람은 고요하다고 까지만 말씀하셨지만 나의 내면의 소리는 뒷 말 까지 들리는 듯하였다.


기장님께선 고요한 바람 정보를 들으신 후,


"어우 제일 부담되는 바람이네."


하셨고


나는 마른 웃음을 지으며


"하하하... 잘 내려보겠습니다."


라고 답하곤 공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활주로와 가까워졌고, 랜딩을 하기 위해 조종간을 살짝 당기는데,


꾸웅... 쿵!


바닥에 박아버린 랜딩은 아니었지만, 부드러움이라곤 카스테라의 부드러움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는 랜딩이었다. 이런 날씨에 이 정도 랜딩이면 정말 똥랜딩이 분명했다.


하...

정말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서 스스로를 자책하는데 옆에서 들리는 기장님의 말씀


"마지막에 배풍이 살짝 불었나 보다."


배풍은 전혀 불지 않았다. 나도 알고 기장님도 알고 계신다. 다만 이 좋은 날씨에 똥랜딩을 하여 밥값 못하는 부기장을 배려해주시는 말씀이라는 걸 나도 알고 기장님도 알고 계셨다.


"하하.. 기장님 죄송합니다.."

"아이 죄송할게 뭐가 있어요. 부드럽게 내리는게 만사형통인가 뭐."


너무 좋으신 기장님이라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면 이해가 갈까.


그 일이 있고 나서는 기장님께서 나에게 착륙 선택권을 주실 때마다 착륙하기에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날씨를 고르곤 한다.


표면적으론,


"기장님! 제가 아직 부족함이 많아 좋지 않은 날씨에 착륙을 많이 해봐서 나아지고 싶슴다!!"


하지만, 내면의 소리는


'기장님 ㅠ_ㅠ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좋은 날씨에는 도저히 부담돼서 못하겠슴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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