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 비행이 있는 날이었기에 인천공항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지하 1층 카페를 들렀다.
아메리카노가 있어야 그날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카페인이 주는 생리적 효과뿐만 아니라 커피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이리라.
늘 그렇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익숙한 걸음걸이가 보인다. 거리가 조금 있었기에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저 걸음걸이는 분명 내가 아는 걸음걸이다. 부기장 교육을 받을 때 담당 교관님이셨다.
"기장님!! 기장님!!!!"
내 외침이 기장님에게 닿았을 때쯤 내 발걸음도 기장님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시곤 걸음을 멈추어 기다리고 계셨다.
"여기 웬일이야?"
"저 이따가 필리핀 가요. 퇴근하시는 거예요?"
"나리타 퀵 다녀왔지."
여전히 시크한 표정과 말투였지만, 공항에서 기장님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기장님께서 곧 퇴직을 하시기에, 당분간은 인천공항에서 기장님을 볼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 기장님. 안 그래도 내일 스케줄 나오면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아마 내일 스케줄 나올 때 나랑 다낭 하나 나올 거야."
"다낭이요?"
"내가 마지막 비행, 너랑 다낭 넣어달라고 회사에 부탁했어."
기장님의 퇴직 전 마지막 비행으로, 망고 부기장과 다낭 레이오버를 넣어달라고 회사에 리퀘스트를 하셨다고 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늘 무심한 말투와 표정으로 티를 내진 않으셨지만, 뒤에서 남모르게 이것저것 챙겨주시는걸 내가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기장 훈련생 때 비행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부족하여 혼났지만, 이따금씩 '너 아니면 누가 부기장 인정심사 합격하냐?' 등의 말로 심금을 울리는 분이었다. 물론 10초 후 바로 또 혼나긴 했지만.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회사의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의 마지막 비행을 같이 할 수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인해 순환 휴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장님과 나는 근무 달이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부기장이 되고 나서 같이 단 둘이 비행을 한 적이 없었다. 교관님과 훈련생으로서의 비행이 아닌, 기장님과 부기장으로서의 비행은 처음이었다.
비행 전 날, 평소처럼 비행 준비를 하는데 괜히 더 떨렸다. 혼나기만 했던 훈련생의 시절이 떠올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기장님과의 비행이 설레서 그랬을까.
이유야 어쨌든, 단 한 번의 실수도 하기 싫었다. 마치 다시 훈련생이 된 듯 더 꼼꼼하게 비행 준비를 했다.
비행 당일,
날씨도 좋았고 바람도 좋았다. 관제사의 평소와 다름없는 지시도 더 친절하게 느껴졌다. 다낭으로 가는 4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실로 정말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채워나갔다. 그동안 밀린 근황부터, 기장님의 새로운 시작, 나의 출판에 관한 이야기, 저 앞에 구름이 괜히 예뻐 보이고, 오른쪽 아래 타이페이 섬이 생각보다 크다는 이야기 까지.
이렇게라면 지구 한 바퀴라도 비행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리는 다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내가 신이 난 나머지 '다낭' 관제사라고 불러야 하는데 계속 다낭 관제사를 '하노이' 관제사로 잘못 부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낭 관제사야"
"예?"
"하노이라고 고만 좀 잘못 불러. 아직도 이러면 어떡할 거야."
"아휴 기장님. 제가 아직 이렇게 배울게 많이 남았는데 꼭 가셔야겠습니까?"
"언제 나아질라나 저거."
그리고 도착 한 다낭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좋았다.
2년 반 만에 온 다낭이기도 했고 그때와 변한 것 없는 분위기도 좋았다. 변함없이 마구 울려대는 경적 소리들도 좋았다.
참,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다낭에 있는 자동차들은 보통 자동차 안에 7개의 클락션이 달려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보다 7배로 경적소리가 더 많이 울리기 때문이다.
횡단보도 파란불에 건너도 빵
인도에 가만히 서있어도 운전자랑 눈 마주치면 빵
그냥 빵
일단 빵
다시 한번 빵
숨만 쉬어도 빵
어? 너? 빵
각설하고,
공항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크루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한 뒤, 20분 후 기장님과 로비에서 만났다.
레이오버 호텔의 위치가 번화가와 그리 멀지 않은 매우 좋은 위치였기에, 우리는 호텔 뒤편에 있는 유명한 쌀국수집을 갔다. 근데 조금 이상하다. 쌀국수집 주인이 2년 반 전보다 훨씬 친절해진 것이다.
"기장님, 여기 조금 이상하리만큼 많이 친절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얼마나 관광객이 안 오면 사장님이 이렇게 친절해졌을까."
"아니 그러니까요. 세상에나. 더울까 봐 우리한테 선풍기 틀어주는 거 보세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러고 돈 받는 거 아냐?"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렇게 쌀국수를 호로록 끝내고, 그 유명한 콩카페를 갔다. 내가 영어로 주문하려고 하니, 종업원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내 한심한 모습을 보다 못한 기장님이 나섰다.
"여긴 한국말로 해야 돼."
"예?"
"잘 봐."
기장님이 종업원을 보며 말했다.
"코코눳 커퓌 두 잔."
"코코눳 커퓌 두 좐?"
"두 좐."
"오께이~"
내가 말했다.
"아니 기장님, 저 이렇게 또 배울게 많이 남았는데, 꼭 가셔야겠습니까?"
쌀국수와 커피를 마셨으니, 사실상 다낭에서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새벽부터 비행하느라 피곤함이 몰려왔기에 호텔에서 조금 자고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한 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 정도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호텔 로비로 나갔다. 조금 일찍 나갔더니 밖의 풍경이 너무 예뻤다. 외국에 서 있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이게 얼마만의 외국인지..
이번에는 동네 맛집 느낌보단, 조금 괜찮아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내가 괜찮아 보인다고 판단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식당 입구에 마치 대감집 느낌으로다가 큰 기둥을 양쪽에 둔 커다란 입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 "엇험" 헛기침을 하고 뒷짐 지고 들어가야 하는 그런 분위기, 그런 분위기의 식당에 입장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하나둘씩 음식이 나왔고, 기장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지나가시던 종업원에게 부탁을 드렸다.
"캔 유 테이크 어 픽쳐 오브 어즈, 플리즈?"
"?"
앗, 기장님의 말씀이 스쳤다.
"어...사진?"
"사진? 오께이~"
사진이라는 말을 기가 막히게 알아들으신 종업원 분께서는 친절히 기장님의 의자를 내 옆으로 옮겨주시며 사진 촬영에 열정을 보이시곤, 우리에게 물었다.
"Father and son?"
내가 답했다.
"Yes."
기장님에게 머리 뒤통수 한 대 맞고, 내가 그리 늙어 보이냐는 기장님의 물음에
아니다, 사실 삼촌처럼 보이신다라고 답을 정정해드린 뒤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산책을 하러 한강으로 갔다.
마침 슈퍼문이 떴고, 한참을 보는데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비행 망고랑 하니까 너무 좋네."
울컥했다.
"기장님, 정말 지금 너무 행복하네요."
"나중에 너 기장됐다고 연락 올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어후."
"기장님, 저 네 줄 달면 유니폼 입고 견장 빳빳하게 달고 찾아갈 겁니다."
"어후."
"근데 그날이 올까요...?"
"오겠지. 언젠간. 생각보다 빨라. 너가 생각하는 것보단."
걸음을 돌려 호텔로 돌아오는 길,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 아침 먹을 거야?"
"어우, 기장님. 저 오늘 하루 종일 먹어서 내일은 좀 늦잠 잘 것 같은데요?"
"알겠어 그럼 쇼업 시간 때 봐."
"네 기장님, 들어가시고 푹 쉬세요."
다음날 아침,
한국보다 두 시간 느린 시차가 있는 다낭에서 꿀잠을 자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기장님의 전화였다.
"엽...븟..세여?"
"지금 아침 몇 시인데 안 일어나?"
"아 기자ㅇ니.ㅁ... 제가 지금.. ㅇ지금 이게 몇 시..."
"아침 7시야. 한국은 벌써 9시고."
"아니 기장님... 지금 아홉 시.. 아니 일곱 시.."
"빨리 밥 먹으러 내려와."
"예 기장님... 후딱 가겠습니다."
여전하시고, 변함없는 기장님의 모습에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아니 기장님 어제 분명 편하게 쉬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
"너라서 부른 거야."
"내려온 이상 저는 커피 두 잔은 마셔야겠습니다."
커피 두 잔과 크로아상으로 채운 든든한 배로 출근을 하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도 어렵지 않았다. 역시 기장님 말을 들으면 안 좋을 것이 없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항공기 주기를 하고, 시동을 끄고, 마지막 체크리스트를 끝냈다.
이제 정말 기장님과 항공사에서 기장과 부기장으로서 비행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고마워. 건강하고 안전하게 비행 계속 잘하고."
그동안 참아왔지만, 기장님의 말씀을 듣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덩치값 안 맞게 주책 떠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기장님, 멋진 곳으로 이직하시는 거 정말,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나도야."
아무리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신다고 해도,
기장님에게 잘 된 일로 가신다고 해도,
이별은 언제나 아쉬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