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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Oct 01. 2022

코시국, 어느 부기장의 홍콩 유랑법

가장 오래된 친구가 있다.

친한 정도가 꼭 기간에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학교 때부터 알아온 이 친구는 그 누구보다 편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지금이야 이렇게 서로 편한 사이지만 예전만 해도 극과 극의 성격 때문에 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너가 틀렸니 내가 옳았니 허구안날 싸우기만 했다.


하지만 양극을 달리던 우리를 가깝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역설적이게도 거리였다. 친구와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을수록 가끔 하는 연락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 잦았고, 그만큼 싸울 일이 없었다. 아니, 싸울 시간이 없었다.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 한 이후 줄곧 해외에서 회사를 다니며 생활을 했고, 나는 한국에서 조종사가 되었다. 학생 때야 카톡으로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제 나에게는 친구를 보러 가고 싶으면 당장 그날이라도 직원 항공권을 끊어서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해외에서 혼자 지내는 외로움과 지쳐감으로 인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약해지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시간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어 친구를 보러 가곤 했다. 친구가 있었던 영국으로도, 홍콩으로도, 전부 즉흥적으로 계획 없이 당일날 결정하여 친구를 보러 떠났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망고야, 너무 힘들어."

그럼 나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묻는다.

"무슨 일인데?"


친구는 타지에 지내며 생활하는 게 조금 지겨워졌다는 말과, 런던에서 하는 거라곤 집, 직장, 집, 직장, 집, 직장이 끝이라는 것.


그럼 다시 내가 묻는다.

"연애라도 해보지 그래?"

"소개팅해줄 거야?"

"본디 외로움은 스스로 이겨내는 법."


친구의 낮은 욕설과 함께 더 의기소침해진 친구에게 내가 말한다.

"런던 갈까?"


나의 이 하해 같은 배려와 마음씨를 이 무지몽매한 친구는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며 굳이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런던에서 몇 년 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서 일했던 친구였지만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보러 갈 수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홍콩은 격리에 대한 규정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엄격함과 까다로움을 유지했던 홍콩이 빗장을 푼 것이다. 물론 완전히 푼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빗장이 풀린 9월 26일 바로 다음날인 27일, 마침 나도 3일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재영이에게 연락을 했다.


"재영아, 오늘 홍콩 갈까?"


그렇게 홍콩 가기로 마음을 먹은 날, 인터넷에는 홍콩이 바뀐 입국 규정에 대한 실제 후기들이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풀린 지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 글을 올릴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나는 홍콩 영사관에 전화를 하여 알아보고,

출국 전 신속항원검사(RAT) 결과지와 사전에 입력한 건강상태 정보가 담긴 QR을 들고 출국을 했다.


Day 0


그렇게 도착한 홍콩,

그동안 공항이 얼마나 한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착한 27일만큼은 줄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PCR 검사를 한다. 약간 공장의 느낌이랄까. 후에 서술하겠지만 무려 3일 동안 뇌하수체를... 아니, 코를 4번을 쑤셨다. 하 정말.. 정말 너무.. 하. 너무 아프다.


도착 PCR 검사를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아니다. 이게 사람이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이렇게라도 홍콩에 격리 없이 여행 올 수 있는 것이 어딘가.


출국 전 동네 내과에서 코를 쑤셨을 때 정말 내 뇌에 면봉이 닿는 느낌이라 잔뜩 겁을 먹었는데, 아니 이게 무엇인가. 홍콩은 PCR 검사의 장인만 있는 느낌이었다. 신속, 정확, 쾌적. 코가 안 아팠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 깔끔하게 검사가 끝났다. 홍콩은 PCR 맛집이다.


그렇게 검사가 끝나고 나오니,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재영이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흔들





하지 않았다.

이 무지몽매한 녀석이 늦은 것이다.


나의 비행기가 물론 30분 일찍 도착하긴 했다만, 2억만 리를 날아온 친구를 공항에 내버려두다니.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면 이것쯤이야 별거 아니다. 물론 투덜대는 나에게, 재영이가 혹시 집에서 쫓겨나고 싶느냐는 협박을 해서는 아니다. 정말이다.


그렇게 재영이를 만나 재영이 집으로 향했고, 하루 종일 근무를 하며 지쳐있을법도한 친구 녀석은 일 할 때 피곤해도 퇴근하면 괜찮아진다는 지극히 직장인스러운 말과 함께, 우리는 새벽 두 시가 넘어갈 때까지 그동안 밀린 수다를 떨고 또 떨었다.


Day 1


평일에 급출발한 여행이었기에, 친구가 휴가를 내기엔 촉박한 일정이었고 나는 6년 만에 온 홍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바뀐 규정으로는 홍콩 도착 후 3일 동안은 "능동감시" 기간이 된다. 더 이상 지정된 호텔에서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대중교통을 타거나 거리를 돌아다녀도 된다. 하지만 식당 안에서 밥을 먹거나 헬스장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능동감시 기간에는 노란색 QR을 발급받고 3일 이후 파란색 QR로 바뀌는 데, 노란색 QR로는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국하자마자 공항에서 받는 PCR 검사를 포함하여 총 4번의 PCR 검사(Day0, Day2, Day4, Day 6)를 받아야 한다. 물론 각 검사 당일에는 검사를 받지 않으면 벌금으로 10,000 홍콩달러를 부과한다는 중국어로 된 무시무시한 문자가 폭탄처럼 전송된다.


결과적으로 나는 2박 4일의 일정이라 능동감시 기간에 다시 한국으로 입국을 했기에 식당을 들어가서 밥 한번 먹지 못했지만, 아쉬움을 남기기 싫어 홍콩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여전히 너무 좋았던 홍콩 거리



배가 고플 때쯤이면 식당에서 포장으로 주문을 하여(능동감시 기간에도 포장으로는 주문을 할 수 있다.)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나왔다.


지금보니 홍콩은 밥 먹고 PCR 검사 받으러 간것 같다



조금 걷다 보니 어느덧 친구의 퇴근시간이 되었다. 갈 수 있는 곳은 없었지만 이대로 집에서만 놀기에도 너무 아쉬운 상황, 이 아름다운 홍콩의 야경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친구와 홍콩 시내를 계속 걸었고, 6년 전에 다녀갔던 곳을 지날 때면 반가움에 그때 찍은 사진을 꺼내어 회상하곤 했다. 참 재밌는 건, 6년 전에도 재영이를 보러 홍콩을 왔었는데 그때의 사진을 보면, 다 똑같은데 늙은 건 우리밖에 없었다.



홍콩의 야경. 홍콩은 야경이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재영이가,


"사진 너무 그지 같다."


그걸 들은 내가,


"사진은 죄가 없어 재영아."


그렇게 죄인 둘은 아쉬움을 홍콩 거리에 잔뜩 흩뿌린 채 집에 돌아왔다.




Day 2


사실상 마지막 여행날이었다.

왜냐하면 자정을 넘어가는 새벽 1시 50분 비행기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해서 불태울 수는 없는 법, 능동감시기간에 몰래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거나(그렇게 할 수도 없거니와) 방역 규칙을 어겼다가는 내가 불타 없어질 수도 있었다.


첫째 날과 다른 것이 있다면, 오늘은 뇌하수체를... 아니, 코를 쑤셔야 하는 날이다. 앞서 말했듯 아침부터 무시무시한 중국어로 된 문자가 전송되었고 그중 알아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10,000이라는 숫자였다.


10,000 홍콩 달러의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다음에 또 홍콩을 놀러 왔을 때 입국 거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주변에 PCR 검사소를 찾아 검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능동감시기간에 다시 재 출국을 하였기에 Day 4, Day 6 검사를 받지 못하는걸 당국에 이야기를 해야 했다.


검사소 출발 전, 처음에는 영사관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홍콩 방역 센터로 전화를 했는데 도통 연락이 닿지 않는다. 영사관에 계신 한국 직원분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하니,


"원래 전화 잘 안 받아요. 받을 때까지 하셔야 해요."


아?


그렇게 한 12번을 했을까,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홍콩의 방역당국 직원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홍콩에 3일 정도 방문을 해서요, 세 번째와 네 번째 PCR 검사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기록에 남겨 놓을까요?"

"비행기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하세요."

"오랫동안이요? 얼마 나요?"

"오~~~~ 랫동안이요."


신빙성이 심히 의심되는 답변을 들으니, 방역 지침이 바뀌고 능동감시기간에만 여행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보다.


일단은 예약번호와 찝찝함을 들고 검사소로 출발했다. 다행히 검사소는 한가했다. 예약을 받는 직원에게 가니 세상 쿨한 표정으로 지정된 곳에 가라고 말해준다. 이때다 싶어 다시 물어봤다.


"제가 내일 출국을 해서요. 세 번째와 네 번째 PCR 검사를 못 받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Forget about it."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PCR 검사를 받으러 들어가는데 세상 심드렁한 표정의 직원이 보인다. 마스크를 내리라는 의미인 듯 대충 입술 훑어내리는 시늉을 한다. 귀찮아하며 말도 하지 않는 이 직원을 보며 드는 생각,


'PCR 검사 장인일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거짓말 조금 많이 보태서 코에 면봉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역시 홍콩은 PCR의 맛집이다.


친구 퇴근을 기다리며 산책


그렇게 홍콩에 와서 PCR 검사만 받다 보니 또 어느덧 친구의 퇴근시간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능동감시 대상자였고, 우리는 선택권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했다.


마지막 날의 메뉴


"근데 망고야,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 둘 중 누가 더 배려 있는 친구라고 생각할까?"

"그게 무슨 말이야?"

"친구 보러 당일에 홍콩으로 날아와서 식당 한번 못 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너랑, 평일에 일정 없이 놀러 온 친구랑 놀아주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늦게 자는 나."

"당연히 나지."

"아니지. 나지."


끝이 날 수 없는 논쟁을 끝낸 건 다가오는 내 비행기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는 게 어디야, 그치?"

"그렇긴 한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긴 하다."

"그건 그렇지."


건조한 대화여도 괜찮았던 것은, 다음 달에는 재영이가 한국으로 놀러 오기 때문이었다.


"곧 보자, 먼저 한국 들어간다."

"오케이. 공항 도착하면 연락하고."


Day 3


Day 3라고 해봤자, 홍콩에 머물렀던 Day 3 시간은 자정부터 비행기가 이륙하는 새벽 1시 50분 까지였다. 밤을 가로질러 날아온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입국 후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반가운 뉴스는 10월 1일부터는 입국 후 PCR 검사도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슬픈 사실은 내가 9월 30일 날 입국을 하여 나의 소중한 코를 한번 더 쑤셔야 한다는 점이었다.


동네 내과에 갔다.


"입국 후 PCR 검사받으러 왔습니다."

"아, 이게 잠시만요.. 내일부턴가? 아..  받으셔야 하네요. 저쪽에 앉아 계세요."


결국 3일 동안 코를 4번을 쑤시는 기염을 토하는 여행이었지만

점점 예전의 자유를 되찾아가는 것 같은 여행 상황이라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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