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조종사는 대리나 과장, 차장, 부장 등 직함으로 불리지 않고 말 그대로 기장과 부기장으로 불린다.
나의 명함에도 "부기장 / 이름"으로 적혀있고, 승진할 때마다 명함이 바뀌는 친구들과 달리, 딱 한번 나의 명함이 바뀌는 날이 있다면 내가 기장이 되는 날과 같은 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어느 직함'급'의 대우를 해준다라는 부분이 있다면, 부기장은 보통 회사에서 과장급의 대우를 받는다고 하고, 기장은 부장급의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내가 처음 부기장이 된 서른한 살의 나이에 분에 넘치는 과장'급'이 되었으니 수많은 좋은 점들이 있었지만, 그 많은 장점들을 몰아내는 단 한 가지의 단점이 있다면, 서른한 살에 멈춰있어야 할 나의 개그가 나이를 무시하고 직위를 따라가버려 과장님의 개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과장이라는 직위는 죄가 없다. 전 세계의 과장님들의 원성을 미리 피하고자..)
이미 예전 글에도 서술했지만, 이를테면 별똥별이 가장 많이 듣는 소원은 "저의"라든지, 박사가 된 친구에게 전공이 뭐냐고 하면서 "혹시 척척박사야?" 같은 Dog드립을 날린다든지 하는 상태다. 분명 나도 이게 재미없는걸 머리로는 알지만 이러한 개그가 입 밖으로 뛰쳐나가는걸 차마 막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개그만 했다간 내 인생에 친구라는 단어가 삭제가 될 것 같아 꾹꾹 참고 있었지만, 참을 수 없는 과장'급' 개그가 튀어나오는 사태가 발생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정말 만나고 싶었던 기장님과 비행이 나왔다. 실제로 같이 비행을 해본 적은 없지만, 몇 년 전 기장님의 비행기에 관숙을 했던 경험이 있어 인연이 있었다. 그 후 지나가며 뵐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셨기에 꼭 한 번 비행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 앞 한식집으로 가서 같이 점심을 맛있게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기장님에게 여쭈어봤다.
"기장님은 뭐 드시겠습니까?"
"아.. 내가 비행 빼고는 결정장애가 있어서."
"아 조종사가 비행 때만 결정 잘하면 되죠."
"그쵸? 망고 기장님은 뭐 드시겠어요?"
"저도 비행할 때 빼고는 선택 장애가 있어서..."
그렇게 결정에 고됨을 느끼는 둘이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데, 자세히 보니 메뉴판은 몇몇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다.
“Coffee, Smoothie, Shake, Tea“ 등.
기장님께서 물어보셨다.
"망고 기장님, 혹시 스무디랑 쉐이크 차이가 뭔지 알아요?"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나의 이상한 개그를 참아야 한다.
"기장님 ^^. 스무디는 갈아 만든 거고, 쉐이크는 흔든 겁니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나의 개그가 아니었다.
결국 튀어나와 버린 나의 정신 나간 소리에,
약 3초간의 정적이 있다가
"하하... 망고 기장님, 다른 사람한테 절대 이런 개그 하면 안 돼요. 특히 나중에 기장돼서 승무원분들께 이런 개그 하면 큰일 나요."
"혹시.. 너무 웃겨서요..?"
"아니요. 사람들이 학을 뗄 거예요."
"아하."
좋은 기장님과 함께 정체성을 잃은 나의 개그를 다잡는 하루였기에,
너무 행복했던 하루.
참고로,
스무디와 쉐이크의 차이를 물어보니 쉐이크에는 우유가 들어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