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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Jan 10. 2024

부기장, 승무원 부부싸움



이번주는 부부싸움을 한 관계로 한 회 쉬어가야겠다.







라고 적으면 이 얼마나 독자와의 약속을 깨는 무책임한 일인가.


브런치 북 설명에 '결혼생활 장려글'이라고 적은 마당에 글은 써야겠고, 그렇다고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화해를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졌다간, 아내에게 화해의 목적이 우리의 관계 개선이 아닌 독자와의 약속이냐, 그렇다면 나보다 독자가 더 중요하느냐는 아름다운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여 싸움이 더 커질 것이 분명했기에 고민을 하다


극적으로,

화해가

성사되었다.


경위는 이렇다.

여느 부부처럼 별것도 아닌 일로 싸움을 시작한다.


싸운 이유는 사실 정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사소하다.


사실 부부싸움이라는 게, 한바탕 싸움이 끝난 뒤 남아있는 토라진 감정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서로 약간 삐친 상태에서 부엌에 왔다 갔다 하다, 손끝이 살짝 스치면서 괜히 흠칫하는 척을 하고, 저녁쯤 되어서 괜히 "밥은?" 같은 일상적인 말로 화해의 물꼬를 틀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실 이미 반은 다 풀린 마음으로 서로 어색한 척하다가 뽀뽀하면 풀리는 것이 부부싸움 아니겠는가.


하지만 승무원 부부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1. 토라진 감정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 시간이 지나버리면 아내가 비행을 가버린다...

2. 부엌에 왔다 갔다 하다 : 아내가 집에 없다...

3. 손 끝이 살짝 스치면서 : 아내의 손이 집에 없다...

4. "밥은?" : 말을 걸어도 대답해 줄 아내가 없다...

5.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 나 혼자 먹고, 나 혼자 기분이 풀린다.


그렇기에,

사실 이미 나는 싸운 후 마음이 거의 다 풀렸는데, 풀 대상이 앞에 없다.

혹자는 말한다. 지구 반대편에도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통화하는 시대에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되지 않느냐고.


에어플레인 모드라고 들어보았는가?

아내의 휴대폰은 지금 비행 중이다.


15시간쯤 지나니, 아내가 탄 비행기가 밴쿠버에 착륙을 하며 동시에 아내의 휴대폰이 통신 가능한 지상에 도착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 내가 에어플레인모드이다. 아내가 땅을 밟으니 이제 내가 비행기에 있다. 스케줄 근무를 하는 부부의 숙명이랄까. 한 달에 서로 집에서 겹치는 날이 많이 없다.


이미 거의 다 풀린 마음으로 나는 비행 근무를 시작한다. 나는 밤 비행이다. 하늘에 수 놓여 있는 가지각색의 별들과 달이 뜬 터뷸런스 없는 고요한 하늘을 바라보며 5시간을 날아가고, 칵핏 안 어느 정도의 소음 속에서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가 싸운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아내에게 내가 잘못한 일만 생각난다. 애틋해진다. 이따 랜딩하고 사과 연락을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풍경을 보다보면, 무조건 모든것이 내 잘못이 맞다.


가끔은 휴대폰으로 실시간 연락보다는, 세상과 차단되어 생각을 조금 깊게 할 수 있는 디지털 디톡스 같은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착륙을 해서 아내에게 연락을 남겨 놓는다.


"어디야?"


아내에게 답장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15시간을 넘게 날아갔으니, 최소한 13시간은 자야 하니까 말이다.


아내가 자고 일어나서 답장을 한다.

"이제 일어났어. 잘 도착했어?"


하지만 이젠 내가 자고 있을 차례이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자고 일어나서 다시 답장을 한다.

"응응, 어디야?"


물론 답장은 없다.

아내는 밴쿠버 어느 식당에서 리즐링 와인을 한잔 곁들인 미트볼 파스타를 먹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연락은 나에게 관심 없는 썸녀와 카톡 하는 그런 느낌처럼,  약 3~6시간에 한두 개씩 이어져가는 카톡 텀으로 서로 심심한 이야기나 하다가, 부부싸움 3일 차쯤 집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드디어

부엌에 왔다 갔다 하며, 손끝 좀 스치고, "밥은?" 물어보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푼다.


짧지만,

아주 길었던 부부싸움.


승무원부부는, 부부싸움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아주 사소한 걸로 잘못 싸움을 시작했다간

까딱하고 3일이 그냥 지나가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하였던가?

칼은 있는데 벨 물이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 물론 겨울에는 물이 얼 수 있으니 물이 있어도 칼로 베어 지지 않을 수도.


혹여 얼음장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무지몽매하고 초보인 남편의 부족함에 많은 잔소리를 부탁드리며

오늘도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서 행ㅂ...


아니아니,

사랑하는 아내와 화해를 하여 행복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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