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너무 슬픈 날이다.
그 이유는 현재 내 주식계좌의 수익률이 -16.23%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생일이지만 출근을 해야 하는 스케줄 근무자의 비애랄까. 특별한 날에 특별한 사람과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슬픈 일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매년 오는 생일이라는 게 익숙해지다가도 막상 생일 당일이 되면 평소와 조금 다른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생일인 오늘, 나는 조종사가 법적으로 받아야 하는 정기훈련을 위해 운항훈련센터로 출근하였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평가를 받는 날이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굳이 이 추운 날 그 먼 곳까지 갔느냐 하면,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우리 회사는 1년에 정기훈련을 두 번 하는데 보통 편조는 기장님 한 분, 부기장님 한 분 이렇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두 분 다 평가대상이 되어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만약 여타의 이유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기장님과 부기장님의 시간이 맞지 않거나 해당 월에 훈련을 받아야 하는 편조 숫자, 즉 짝꿍 숫자가 맞지 않는다면, 오늘의 나처럼 부기장 한 명과 기장님 두 분 이렇게 정기훈련을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assist의 자격으로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며, 기장님 두 분에 대해서만 평가만 이루어진다.
아니 그렇다면, 나의 평가도 아닌데 굳이 힘들게 훈련센터를 와서, 대부분의 조종사에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되는 정기훈련을 받는 게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되는가 싶을 수도 있겠다.
이것은 바로 회사에서 assist 부기장에게 나오는
쨥쨜한 일당ㅇ....
바로, 기장님의 훈련과 평가를 도와드리며 곧 있을 나의 훈련을 미리 연습하는 어떠한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랄까. 연습은 100번 해도 부족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곧 다가올 나의 훈련을 미리 한번 체험해 보는 경험은 색다르면서도 좋았다. 그리고 조금 편한 마음으로 시뮬레이터를 타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슬픈 것은, 그렇게 훈련을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가 싫어서 집을 나간 것은 아니고(아니라고 믿고 싶고), 비행을 갔다.
훈련이 잘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오빠 끝났어!"
"오빠 잘했어? 고생했어."
"한국 너무 추워 ㅠㅠ 여보는 어디야?"
"오빠 나는 발톱 색칠하고 있어(아내가 무슨 전문 용어를 얘기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뭘 팬다고 한거 같은데)"
"마사지도 받고 밥 챙겨 먹고 들어가."
"응응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고 이따가 집 가면 연락 하자."
터덜터덜 집에 들어오니 카톡이 쌓여있다.
고맙게도 생일을 챙겨주는 주변 지인들의 연락이다.
하나하나 답장하다 선물로 받은 치킨을 하나 시킨다.
치킨이 왔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 그랬나.
Birth Chicken Death
거기에 더해지는 아내의 카톡,
'오빠, 내일은 내가 집에 가서 맛있는 집밥 해줄게.'
더이상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