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한 달 중 가장 기다리는 날은
첫 번 째는 월급날이오,
두 번 째도 월급날이오,
세 번 째도 월급날이니,
대감집에 일하면서 근로소득을 벌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아무래도 브런치 북의 제목을 일개미 부기장의 기쁜 우리 월급날로 바꿀까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와 한 달 중 월급날에 버금가게 기다려지는 스케줄이 나오는 날에, 무려 방콕 가는 스케줄이 겹친 것이다. 게다가 아내 회사가 머무는 호텔은 내가 머무는 호텔과 같은 곳이다.
내가 마카오 비행을 가고, 아내는 홍콩으로 비행 가서 아내를 보러 배 타고 간 적은 있어도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호텔이 겹치다니.
비록 그렇다 하여도 점심과 이른 저녁 정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얼마나 낭만이 치사량 근사치에 해당하는 일인가. 둘 다 승무원이 된 이후 처음이었다.
내가 호텔에 도착할 시간은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같이 비행한 기장님과 객실승무원분들에게 고생 많으셨다, 인사를 하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다니는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크루분들이 우르르 들어오신다. 아내가 안 보인다. 다른 팀인가 보다.
또 20여분 정도 지나니 한 팀이 우르르 들어온다.
아내가 안 보인다. 다른 팀인가 보다.
그때 카톡 하나가 온다.
'오빠!! 나 지금 크루 버스야.'
그렇다는 말은 이제 곧 20분 정도 후면 도착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20여분 지나니 이번엔 아내가 속한 크루 팀이 들어오고, 맨 뒤에 쭐래쭐래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있는 아내가 보인다. 그렇게 상봉한 우리는 감격스러움 한 스푼을 얹고, 이 아름다운 방콕에서 얼른 새벽에 나가서 밥을 먹자고 “계획”만 했다가, 쏟아지는 피로에 세월을 실감하고 내일을 위한 체력 비축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날, 고작 한국과 시차가 2시간 차이 난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척을 한 우리는, 한국 시간으로 11시였지만 태국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일어나서 근처 몰에 들러 간단하게 쇼핑을 하며 맛집을 알아보았다.
둘 다 신혼여행에서 조차 항공권과 호텔만 예약해 놓고 출발한 성격이라 계획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점은 잘 맞아서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누구는 계획적이지만 다른 누구는 무계획적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생각은 뒤로하고 몰에 가는 길,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아보니 근처에 평점이 좋은 미쉐린 맛집이 하나 눈에 띈다.
예약을 하려고 연락을 했는데, 예약 가능한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빈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 하였는데 한 20여분 지났을까, 식당에서 연락이 왔다. 빈자리가 생겼으니 지금 오면 된다고. 무계획의 극치인 우리에게 이따금씩 이런 행운이 따른다.
바로 택시를 타고 식당을 가니 약간 투박한 느낌과 정돈된 느낌이 같이 섞여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직원은 친절했고 오픈키친같이 보이는 곳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직원이 다가온다.
"여기 세 자리 중에 하나 골라 앉아."
나는 당연히 안쪽에 창가 쪽을 가려했지만, 아내는 어째 문 바로 앞에 사람들이 드나들어서 불편할 법도 한 자리를 고른다. 내가 물었다.
"여보 여기가 정말 괜찮아?"
"오빠, 여기가 뒤에 벽이 이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그리고 추억은 죽지는 않지만 사진이 남는다. 아내의 현명한 위치 선정에 감탄을 하고 앉았다. 제일 유명하다는 음식 몇 개를 시켰고 꽤 만족스러웠다.
배도 불렀겠다, 아이콘 시암을 가려하는데 강이 중간에 있다. 예전에 기장님과 배를 타고 이 강을 건넌 적이 있기에 아내에게 배를 타고 건너자고 했다. 표 가격은 5바트. 한국돈으로 188원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느끼는 낭만은 188억 원어치. 우리는 거의 가라앉지 않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생긴 낭만 터지는 배를 타고 강 건너 아이콘시암으로 갔다.
지하에 수상 야시장 컨셉의 쑥시암으로 갔다. 온갖 먹거리와 눈요기거리들이 있고 가죽공예, 옷가게 등이 즐비했다.
'아까 식당에서 좀 덜 먹을걸'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갈 곳이 없을 정도로 배부르게 먹고 온 나의 선택을 후회하며, 시원한 주스를 시키려고 갔다. 여러 주스가 있었고, 눈에 띄는 건 당연 망고 파일럿 이름에 걸맞은 망고주스었다.
"오빠 망고주스 먹을 거지?"
"여보, 수박주스 마실게."
"망고 파일럿이?"
"수박주스....."
더위에는 장사 없다.
아내는 망고주스로, 나는 수박주스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참에 수박 파일럿으로...?
그렇게 데이트를 하며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나는 그날 저녁 출발하는 스케줄이었고 아내는 다음날 오전에 한국에 돌아오는 스케줄. 그렇기에 너무 무리 말고 마지막으로 호텔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가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마트를 들러서 호텔로 걸어가는 길, 노상에 고소한 음식 냄새가 풍기며 사람들이 맥주 한잔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캬... 우리도 출근만 아니면 저기 앉아서 바람 쐬면서 맥주 한잔 하는 건데 그치?"
"나중에 우리 여행으로 오면 저렇게 하자."
"너무 좋지. 그래도 비행으로 와서 이런 데이트도 하고, 생각보단 괜찮은 직업이야."
내 직업에 감사해하는 마음은, 비록 새벽을 새고 날아오면서 거울에 비친 시뻘게진 눈을 보며 살짝 수그러 들긴 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직업이다. 아내와 같은 업계에 있다는 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