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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귀 해변

얼마나 놓치며 여행을 했을까

by 망고 파일럿





능귀 해변.

지나치게 선명한 바다와 내가 본 가장 푸른 하늘, 그 흔한 천막 하나 없지만 이따금씩 서있는 나무 그늘로 햇빛을 가리기에 충분했던 곳.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소란하게 흔들리는 나뭇잎들 아래, 맥주를 마시면 흥이 넘쳐버릴까 두려워, 시원한 맥주 대신 달콤한 콜라로 아쉬움을 달랬던 곳.

걸음마다 카메라를 들어 찍고 싶었지만, 아직 보지 못한 곳이 많아 발걸음을 서둘렀던 해변.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조금은 단단해진다.

해져버린 슬리퍼가 거슬려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가니, 작은 조개껍질들이 내 발바닥을 타고 같이 걷기 시작한다. 조금 따끔거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깨진 유리병들보단 순한 놈들이니, 이쯤이야.

사진기를 들고 다채로운 풍경을 찾기 시작했다.
골목 어귀를 들어가 보니 햇볕에 말리고 있는 알록달록한 담요가 있다.

조금 더 자극적인 색이 없을까,
부족한 색이 아쉬워 지나치려는데 그 옆에 작은 낙서들이 보인다.

조약돌로 벽을 분별없이 긁어놨다. 하지만 괜찮다. 화려하지 않은 벽이었기에 낙서들이 거슬리지 않는다.

지붕에는 빗물에 녹이 슨 허름한 철판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그래도 이곳저곳 얼룩진 벽이 녹슨 철판을 외로워 보이게 하지 않는다.

지게에 있는 썩은 나무 조각들은 언제부터였는지 빗물을 많이 머금은 듯하다.

원래 다들 저런 색이었을까,
세월에 바래진 것들이 발걸음을 잡는다.

한동안 서서 바라보니, 썩 예뻐 보이기 시작한다.
심심한 줄로만 알았던 색들이 자연스럽다.

그동안 여행하며 얼마나 놓쳐왔을까,
무심코 지나왔던 심심한 풍경들이 아쉽다.
차라리 카메라를 들어 이곳저곳 찍어볼걸.

화려한 색의 벽이었다면, 낙서 자국을 견딜 수 없었을 테고, 녹이 슨 철판을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을 텐데.

차라리 조금 못난 벽이 고맙기도 하다.

변덕스럽지만, 취향이야 늘 바뀌기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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