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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물건 필요해?

잡초 말이야

by 망고 파일럿



해변들을 거닐며 바다를 보니 거리마다 물 색깔이 다르다. 투명색 하늘색, 에메랄드색, 그리고 섞여있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색까지. 하늘을 훔쳐다가 바닷가에 감춰 놓으면 그런 색이 날 것만 같은 바다였다.

바닷바람이 좋았다. 모래사장은 한적했지만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햇볕이 뜨거워서인지 짚으로 만든 파라솔 아래 누워 기분을 달래는 사람도 있었고, 차라리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몸의 온도를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 바다가 신이나 어느 정도 물장구를 치다, 바닷물에 비친 태양빛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파라솔을 찾기 시작했다. 적당한 그늘을 찾아서 앉아 쉬고 있는데 또래 나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오더니 말을 건다.

청년 : 죽여주는 물건 필요해?
나 : 응?
청년 : 잡초 말이야.
나 : 잡초?

그때까지만 해도 잡초라는 것이 그걸 의미하는 것인 줄 몰랐기에 조개껍질을 이어 붙여 만든 목걸이처럼 풀을 따다 엮어 만든 기념품 따위인가 싶었다.

나 : 아니 괜찮아.
청년 : 그래? 정말 죽여주는데.
나 : 괜찮아, 오다가 많이 봤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걸 보니 의사소통이 안 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나에게 여행을 온 목적이나 이름 따위를 물으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가다 또 한 번 본색을 드러낸다.

청년 : 예쁜 여자는 어때?

이쯤 되니 짜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더운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그를 떨쳐낼 생각으로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을 하니, 그가 여자 친구의 이름을 묻는다. 적당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말을 얼버무렸다.

나 : 어.. ‘뻥이야’
청년 : ‘펑야?’ 정말 예쁜 이름인데?

그의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이 나왔다. 끈질긴 그의 요구를 몇 번 거절하니, 그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엉덩이를 가진 여자들이라며 자랑 일색이었지만 내가 심심한 대꾸를 하자 이내 곧 돌아선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흘겨보곤,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싶었다. 풍경에 눈을 적셔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고운 모래알에 등을 맡겨 잠을 청해 보기도 했다. 좀 전의 일만 없었더라면 지극히 평화로웠다. 아니다, 어쩌면 그것도 여행의 일부니 아무렴 상관없었다.

네 시간쯤 지났을까, 배가 고파온다. 몸을 들어 식당으로 가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낯이 익다. 낮에 봤던 그 청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그가 나를 보며 ‘후회하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물론 후회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에는 정말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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