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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재보단 현지인이 낫지

by 망고 파일럿


배탈이 나서 모시 마을로 가는 일정이 하루 뒤쳐졌다. 결국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싸구려 숙소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한 방에 네 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방안에는 여전히 나 혼자 뿐이었다. 여행자들이 자주 찾지 않는 숙소인 것 같다. 깐깐한 주인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만약 론리플래닛 작가였다면 숙소를 소개하고 마지막은 이렇게 썼을 것이다.


‘주의 : 숙소 여주인이 매우 까탈스러움’

다음날 아침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다. 하지만 숙소 여주인의 성격을 견디는 것보다 버스에서 설사를 하는 일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 머리만 대충 감고 배낭을 꾸려 밖으로 나왔다. 키를 반납하러 1층으로 내려가니 숙소 주인은 안 보이고 경비원이 바깥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앉아있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그는 강도가 오면 몸싸움으로 막아내기보다 말로 설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마른 몸에 삐뚤게 쓰고 있는 모자와 벽에 기대어져 있는 지팡이를 보고 그 정도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키를 반납하고 웃으며 인사를 한 뒤 모시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나의 뱃속보다 더 울렁거리는 길을 10시간 정도 달려서 모시에 도착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미리 점찍어둔 숙소를 찾아가는 건 무리였다. 제법 어둑해진 시간이었고 여행책을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가로등 불빛이 충분하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버스 역에서 가까운 숙소로 들어갔다.

도미토리 방을 배정받고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쓰며 하루를 다듬고 있는데, 방에서 빨갛게 무르익은 홍시가 왔다 갔다 거린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달아오른 독일 여행자였다.

얼굴이 왜 그리 빨개졌는지 물으니, 백인들은 햇빛을 받으면 빨갛게 달아오른단다. 그리고는 이어서 한풀이를 시작한다.

이야기인즉슨,
해변가를 걷다가 길을 잃었는데, 방갈로나 나무 그늘이 하나도 없더란다. 그래서 태양빛에 피부가 시뻘게졌더니 다른 흑인들이 '헤이, 랍스터! 랍스터!' 하고 놀렸단다.

나는, '그래, 바닷가재보단 현지인이 낫지' 하는 마음에 내심 뿌듯해졌다. 피부가 차라리 거뭇해지는 게 처음으로 자랑스러웠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약간 우쭐거리며, 난 여행 보름 차만 되면 현지인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자랑하니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다.

결국 서로 앞다퉈 위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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