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연착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었다. 뭐가 그리 소중했던지, 수하물로 부치지 않은 배낭은 피곤의 무게를 보태고 있었다.
카트만두 공항에 내리자마자 숙소부터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고, 서둘러 입국 심사장으로 향했다.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불쾌하지도 않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이는 직원들의 몇 가지 간단한 인터뷰를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가격을 낮게 부르며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한다. 하지만 예전에 단돈 몇 천 원을 아끼자고 욕심을 부리다 택시강도를 당한 적이 있어서 그 사건 이후로는 정가 이하 택시는 타지 않기로 다짐했기에 그들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고 곧장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 걸어 나갔더니 귀찮았는지, 아니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혹은 다른 연유에서인지 아무튼 호객행위에 참여하지 않아 꽤나 여유로워 보이는 몇몇 택시들이 보였다.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택시 밖으로 나와 그들의 언어로 떠들고 있었고 나는 그중 인상이 적당히 좋아 보이는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나의 인기척을 느끼자 평소보다 과장된 웃음을 보이며 나를 반긴다. 그에게 카트만두 시내까지 가는데 얼마 정도 받는지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가격을 평소보다 높게 부른다.
아저씨에게 깎아 달라고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아저씨 택시 타려고 일부러 걸어 나왔다고 너스레를 떨자 곧바로 뒤돌아서 걸어간다.
단호한 남자였다.
머리에 꽂히는 햇살은 머리카락이 없었더라면 정수리를 이미 벌겋게 달구었을 만큼 따가웠다. 타는 냄새가 조금 났던 것도 같다. 자동차 매연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 머리카락이 타고 있는 냄새라고 해도 어느 정도 수긍은 갔을 것이다. 그런 햇살은 나에게 더 이상 흥정할 시간과 힘을 주지 않았다. 결국 흥정을 멈추고 정가보다 조금 더 주고 타고 시내로 향했다.
한 십여 분쯤 달렸을까, 큰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고 케케묵은 익숙한 먼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몇 차로 인지도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연한 차선 색들과, 무분별하게 들리는 경적소리들, 그리고 운전자들의 무언의 손짓들이 신호등을 대신한다.
시내에 도착해서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길이 너무 복잡했던 탓에 비행기에서 미리 표시해 놓은 숙소들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이곳저곳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겉모습이 그럴싸한 몇몇 숙소가 눈에 들어온다.
무거워진 걸음을 옮겨 카운터로 가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당황스럽지도 않다. 난 이미 이런 걸 숱하게 겪어왔다. 그동안의 노하우로 만들어진 흥정의 신이 빙의한 채 만족스럽게 가격을 깎아냈다.
방에 들어와 내던지듯 짐을 내려놓고 신발만 벗은 채 침대에 누웠다. 여행 첫날은 늘 이랬다. 첫날 방에는 나 말고도 많은 감정들이 허락 없이 들어와 묵는다. 앞으로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한 번 되뇐다. 그 와중에 나를 방문하는 감정을 빠트림 없이 반긴다. 보통은 좋은 감정들이지만 가끔은 걱정들이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실망도 있다.
그들과 누워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숙소 근처에서 허기라도 달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어 손에 들린 여행책자를 펼쳤다.
내가 묵는 숙소의 가격이 나와있다.
내가 2배 냈다.
그들은 역시 나보다 한 수 위다.
쓰린 속 달래러 맥주 하나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