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방식

by 망고 파일럿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혼자 다니는 것이 버릇이 됐다.

다른 누구를 챙길 수 있을 정도의 꼼꼼한 성격도 못되거니와, 변덕스러운 성격 탓에 어느 한 곳이 마음에 들면 꽤 오랫동안 지내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또 혼자 여행을 하면 만나는 인연의 폭도 넓어진다. 그것이 좋았다. 나의 언어를 쓰지 않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도 재미있고, 전부 다 알아듣진 못해도 그들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즐겁다. 그렇게 난 저마다의 여행 철학을 존중한다는 변명으로 혼자서의 여행을 즐겨왔다.

혼자 여행을 가면 모든 감정들은 날을 세워 나를 에운다. 그런 감정이 좋았다. 여행을 시작할 때의 설렘, 낯선 곳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두려움, 그리고 혼자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느끼는 지극한 외로움들까지, 완연하게 버텨보다가도 가끔은 구차한 모습일 때의 나를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혼자 다니다 보면 감정의 진동 폭도 넓어진다. 작은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쉽게 토라진다. 가끔은 조울증이라고 나를 진단해보기도 한다. 그만큼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시간들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밖의 소리보다 나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니까.

히말라야를 갔을 때도 나름 그럴싸한 여행 철학으로 나를 치장하며 일행 없이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다.

셋째 날이었다. 아침부터 구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새로 산 우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걸음마다 찢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비를 막아주지 못하는 우비가 거추장스러워 배낭 겉에 대충 동여매고 젖은 걸음을 바쁘게 옮기기 시작했다. 탈마을에 도착했을 땐, 배낭 안에는 물을 머금은 옷들과 글씨가 번져 알아볼 수 없는 일기장뿐이었다. 숙소 주인에게 위에 눈이 많이 와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서둘러 젖은 옷가지들을 골라내어 방 한 켠에 내어 놓고 다른 길을 알아볼 생각으로 젖은 지도를 챙겨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다른 여행자 Thierry가 있었다. 그와 간단한 인사를 하고, 창밖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따뜻한 마살라티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고 있는데 그가 말을 건다.

“혼자 왔어?”
“응, 너도?”
“응.”

평소와 같았으면 혼자 오게 된 이유를 물으며, 나 또한 혼자 여행을 하는 이유를 근사하게 포장해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는 당분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짧게 웃어 보인 뒤 다시 고개를 내리곤, 다른 트레킹 코스를 알아보기 위해 지도를 펼치려는데 그가 말을 한다.



“사실, 전에 여기 한번 와 본 적 있어.”
“아, 정말?”
“응, 그때도 지금처럼 눈이 많이 와서 못 올라갔어.”

미처 끝내지 못한 트레킹을 마무리하러 왔나 생각하고 시큰둥한 대답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그가 나머지 말을 잇는다.

“그땐 전에 만났던 사람이랑 왔었어.”

뜻밖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어쩌지 못하고 물었다.

“그 사람도 알고 있어?”
“응.”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는 혼자 온 사실을 그녀에게 알리고 온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녀가 그에게 부탁한 것일까? 나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섞이는 사이 그는 행동을 잠시 머뭇거렸고 그런 그의 모습에선 선뜻 내뱉지 못한 마음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이번엔 꼭 끝내고 오라고 하더라.”

서둘러 더 묻고 싶었지만, 그의 기분을 기다렸다.

“넌 어떻게 할 거야?”

“내일 내려가서 다른 코스로 가려고, 같이 내려갈래?”
“고마워, 근데 이번엔 며칠이 걸려도 끝낼까 싶어.”

근사한 마음이었다.

결국 난 내려오며 다른 코스를 찾았고, 그는 꽤 멀리까지 마중 나오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내가 그곳에 젖은 옷가지를 두고 왔을 때, 그는 마음을 두고 온 모양이다.

잊는 것도, 지우는 것도 안될 때 차라리 선명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은 그것을 잡아보는 것.

혼자 여행을 온, 그리고 혼자 올 수밖에 없었던 조금은 특별한 그의 이별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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