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여행자라면

by 망고 파일럿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음식이 정말 그리울 때가 있다.
서러운 일을 당했을 때 특히 그렇다.

아프리카 여행을 갔을 땐 고추장이나 라면스프를 챙겨가지 않아서 네팔 여행을 할 땐 꼭 챙겨가야지 다짐하며, 여행 리스트에 체크까지 했는데 또 깜빡했다. 결국 포카라 마을에 도착해서 트레킹을 가기 전에 간식이라도 살 요량으로 식료품 가게로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내 팔뚝만 한 초콜릿이었다. 그렇게 큰 건 처음 봤다. 정말, 엄청 컸다. 이거 하나면 일주일 동안 간식뿐만 아니라 밥 걱정도 안 해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큰 초콜릿을 넣고 다니기엔 나의 배낭이 작았다. 아쉬운 마음에 내려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대형마트 못지않았다. 내려가자마자 바구니를 들고 바로 앞에 있은 작은 초콜릿을 두어 개 집어넣은 뒤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지각색의 과자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같은 이름의 과자가 종류별로 열 댓가지가 넘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는데, 한글로 쓰여있는 음식이 눈에 들어온다. '김치라면'이었다. 한국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포장과 이름이었다. 하나를 집어 들고, '고추장도 없고 라면수프도 없는데, 사? 말아?' 수십 번을 고민하다 결국 내려놓았다.


모름지기 여행자는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생활에 스며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여행의 재미고 묘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마따나, 난 네팔로 여행을 왔고 여행자라면 마땅히 그 생활에 녹아들 필요가 있었다.

혼자 내린 그럴듯한 여행 철학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옆에 있는 망고주스를 하나 집은 뒤 숙소로 돌아왔다. 이후로 그럴싸한 여행 자세를 고수하며, 초콜릿과 망고주스로 트레킹 여정을 버티다,

트레킹 첫날 저녁으로 백숙 먹었다.
하필 내가 묵은 숙소에 백숙이 있는 것 아닌가.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백숙인데.
그것도 히말라야의 맑은 물과 고운 공기 먹고 자란 닭으로 만든 건데.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다.

진짜 맛있었던 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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