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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그리 꼼꼼한 성격이 못 돼, 여행 가기 전에 이것저것 챙겨서 가는 편이 아니었다. 여행 기분이라도 낼 겸, 여행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치약, 칫솔, 양말 따위 것들 이외엔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차피 무작정 출발해도 여행지에 어련히 다 갖춰져 있으려니 하는 마음도 있었다.
히말라야를 트레킹 하기 전에 북한산 등산과 다를 바가 없겠다 싶었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눈이 왔으면 얼마나 왔겠나 싶었다. 방수되는 트레킹화에 카고 바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잘 때 춥다는 이야기를 들어 내복 몇 벌과 두툼한 양말로 배낭을 배 불리니 이만하면 꼼꼼하다 싶었다.
포카라에 도착한 첫날, 옆에 있는 다른 한국 여행자를 보니 배낭을 두 개나 매고 왔다. 한국 사람들 걱정 많은 건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을 지으니 그가 나를 보며 묻는다.
“배낭 그게 전부예요?”
자랑스러운 듯 그렇다 대답했다. 나는 조금 우쭐해진 상태로 보기엔 작아 보여도 필요한 건 다 들어가 있다고 덧붙이니 그가 방수용품들을 어떻게 다 넣었냐고 묻는다. 방수라면 걱정 없다. 나는 정성스럽게 매듭지어져 있는 새로 산 진갈색의 트레킹화를 내어 보였고 내심 신발이 예쁘다는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다.
“트레킹 코스 정상은 눈밭이라는데 괜찮겠어요? 얼핏 들어보니 무릎까지 왔다던데.”
무릎이라고? 무릎이라니,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 사단을 낸 것이다. 결국 처음에 들고 간 카고 바지로는 안 될 것 같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던져 놓고 지갑만 챙겨 나왔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옷 가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거리에는 적지 않은 수의 옷 가게들이 있었고 그중 ‘on sale’이라는 글자로 내 눈길을 끈 가게로 들어갔다. 적당한 가격에 보름 정도만 버틸 수 있는 바지면 충분했다.
가게를 들어가 입구 옆에 있는 작은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주인이 보인다. 그녀에게 방수되는 바지가 있냐고 물으니 있단다. 모양새는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조금 저렴한 것으로 찾는다고 하자 바깥에 진열된 것 중에서 하나 골라오라고 한다. 바깥으로 나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바지 중 하나를 골라잡고 들어와 주인에게 이 바지 100% 방수되냐고 묻자 주인은 나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인티 뽜이브.”
그 모습이 재미있어 내가 웃으니 주인도 씨익 웃는다.
한 60% 방수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 바지는 방수가 잘 되었다. 다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욱부욱 찢어지는 게 조금 흠이었다.
다음에 바지 살 때는 걸을 때마다 찢어지진 않는지 물어보고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