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 파일럿 Jun 05. 2021

항공사 입사 전과 입사 후

지금 나는 인천공항 1 터미널 2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인천공항 1층은 도착층이고 3층은 출발층인데 그럼 그 사이에 애매하게 낀 2층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묻는다면 항공사 사무실을 포함한 공항 관련된 사무실이 모여있는 장소다. 따라서 일반적인 여행객들이 자주 오는 곳은 아니다. 이따금씩 보이는 여행객은 길을 잃어서 잘못 들어온 여행객들 뿐이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부터 200m 거리도 채 안 되는 곳에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고, 이따금씩 회사 사원증을 매고 커피를 사러 오시는 기장님이나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사무장님들도 보인다. 평소 같았으면 그분들을 보며 “안녕하십니까!!”하며 고개를 내려 인사를 적극적으로 했겠지만 오늘은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행이 없는 날이고, 비행이 없는 휴일, 즉 DO(day off) 날에 공항에 굳이 와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나는 공항이 좋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 복작거렸던 인천공항


공항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마냥 설레서 연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사람들, 급하게 도착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서둘러 체크인 창구로 향하는 사람들, 커다란 피켓을 들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들로 다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눈물바다다. 이별인지 재회인지 모를 어떤 이들은 서로의 체온을 잊어버리기 싫은 듯 두 팔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있는 이곳, 공항이다.


그럼 하필 도대체 왜 회사 사무실과 가까운 2층 카페에 앉아있느냐는 물음에 답을 하자면, 이곳에 있으면 사람들이 잘 보인다.


높지 않은 난간과 심지어 그조차 유리로 되어있기 때문에 1층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잘 볼 수 있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은 구경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어느 소심한 부기장의 처절한 은닉이랄까.


그렇다고 변태처럼 침 흘리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길.


조종사가 되면 여러 공항을 돌아다니면서 각 공항마다의 에피소드를 모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컨대 항공사 입사 전, 내가 생각했던 여러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는 이런 식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을 마친 어느 퇴근길, 당당한 어깨로 캐리어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걸어가는데 저기서 나를 보고 달려오는 5살 남자아이가 존경 어린 시선으로


"와 조종사다. 저 꿈이 조종사인데 사진 찍어줄 수 있나요?"

"그럼요. 조종사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돼요."


머리 쓰담쓰담


"감사합니다~ 공부 열심히 할게요."


뭐 이런.

영화에서 나오는 뭐 이런 거 있지 않은가.


또, 어느 날은 비행을 마치고 퇴근하다가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시며,


"젊은이, 참 나의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구려."

"어르신, 어떤 사연이 있으십니까? 정말 궁금합니다."

"허허허 사실 나도 한 때 유니폼을 입고 캐리어를 끌며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지."

"아이고 기장님, 제가 몰라 뵙습니다. 어느 항공사에 있으셨는지요."

"사연이 아주 많지. 말하자면 길다네. 커피라도 한잔?"

"아이 좋지요."


뭐 이런 거.

첫 조종사의 꿈을 꿨던 27살의 뇌에서 멋있어 보이는 뭐 이런 거 있지 않은가.


그런 부풀다 못해 터지기 직전의 꿈을 안고 미국 비행 유학을 떠났고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우리 항공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2년 전 그날, 내가 꿈꿨던 조종사 에피소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꿈이었는지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출근을 할 때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출근을 하면 불편한 점들이 많아 세 줄짜리 금색 줄이 그어져 있는 견장과 사원증을 뺀 채 일반 셔츠와 크게 다르게 생기지 않은 흰색 유니폼 셔츠만 입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들어가 뭐 잘못한 거 있는 사람 마냥 구석에 서서 주섬주섬 견장 꺼내고, 사원증 꺼내고, 재킷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브리핑실까지 직행하는데, 약 3분 걸린다.


내가 공항에서 조종사로 보이는 시간은 단 3분.

이 3분 동안 무슨 일이 있겠는가.


또한, 기장님과 브리핑실에서 비행 브리핑을 마치면 부기장 나부랭이인 나는 기장님을 쫄래쫄래 따라서 바로 게이트로 간다. 시선은 오로지 경주마처럼 앞만 본채로. 나의 비행기가 주기되어있는 게이트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 마냥. 누군가 걸어가는 나에게 말이라도 건다면


"저는 지금 전투를 하러 가야 합니다. 생계형 파일럿이거든요.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여쭤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할 기세로 말이다.

심지어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본 친구가 이런 문자를 보낸 적도 있다.


'너 뭐 화났냐?'


대충 내 출근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물론 모든 조종사가 이렇게 걸어가진 않는다. 내가 그렇다는 거다. 내가.

그리고 아마 조종사 중에서 나만 이렇게 걸어갈 것이다. 아직 비행 생활 몇 년 되지도 않은 쭈구리라서.


비행이 끝났을 때는 또 어떤가.


게이트에서 같이 비행했던 기장님과 객실 승무원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다. 맞다. 그때 그 화장실이다. 주섬주섬 화장실 구석에서 견장을 떼고, 사원증을 벗고, 재킷을 접어 캐리어에 넣는다. 웬만한 사람 눈에는 일반인처럼 보이게끔 위장을 한다. 이따금씩 화장실 구석에서 옷에 뭘 붙였다 뗐다 하는 사람이 보인다면 너무 놀라지 않아 주셨으면.


그리고 집에 간다.


이러는데 무슨 공항에서 에피소드가 생기겠는가.

정말 우연찮게도 그 기적의 3분 동안 누군가와 말을 걸어 대화를 한다 해도 나는


"죄송하지만, 브리핑 시간에 늦으면 안 됩니다. 미스 플라잇을 하게 되면 제 밥줄이 끊기거든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생계형 파일럿입니다.”


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이고, 그 사람은 뭐 이런 밥맛없는 놈이 다 있냐며 다시는 말을 걸어주지 않을 것이다. 꿈에 부풀어 막 항공사에 입사해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를 엮어 내겠다는 확실한 목적을 가졌다가 무너진 나의 심정은, 표주박을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소동파를 보며 일장춘몽을 깨달은 노파만이 이해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하였는가. 물론 하늘이 무너지면 안 된다. 비행기가 날아야 하니까.


아니,

여하튼 정말 감사하게도, 이 직업은 공항에서만 재밌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직업 특성상 매번 다른 기장님들과 비행을 하면서 생기는 일들도 있고, 외국에 레이오버하며 돌아다니며 겪는 일들, 타지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생기는 일들 등. 심지어 공항에서 조종사로 티 나는 그 3분 안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에 발생한 일들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서술해보려고 한다. 혹자가 기대하는 어떤 조종사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내용, 정보 등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조종사의 위엄은 철저히 배제한 채 초보 부기장이 웃기려고 작정을 하고 쓴 비행기록들이니, 부디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작가의 이전글 “기장님, 저 악몽 꿨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