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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왜 이렇게 하루 종일 비행기에 있는 것 같지?"

by 망고 파일럿


2박 3일 국내선 스케줄 중 마지막 날이었다.

대구에서 출발을 하여 제주를 들러 김포를 갔다가 다시 제주를 찍고 다시 김포로 올라오는 스케줄,

내가 쓰고도 문장이 지저분해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첫 번째 레그 : (출근)대구 - 제주

두 번째 레그 : 제주 - 김포

세 번째 레그 : 김포 - 제주

네 번째 레그 : 제주 - 김포(퇴근)


이렇게 쓰면 편할까.

아무튼 이렇게 뽀레그, 즉 하루에 네 번의 비행을 마쳐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이미 첫날과 둘째 날, 국내를 하도 돌아다닌 탓이었을까. 마지막 날 조금은 지쳐있던 기장님과 나는 보다 차분해진 비행을 하며 승객분들을 열심히 목적지로 데려다 드리고 있었다.


두 번째 레그 중, 한참을 내리던 비는 마침내 그쳤지만 우중충한 구름은 여전히 남아 안 그래도 차분한 칵핏 분위기를 조금 더 나른하게 만들고 있었다. 김포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5분 정도, 순항고도에 올라 기장님께서 기장방송을 마치신 뒤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오늘 왜 이렇게 하루 종일 비행기에 있는 것 같지?"

"기장님, 저희 오늘 하루 종일 비행기에 있는 거 맞습니다."

"아 그르치?"

"예."

"아니 어쩐지."

"요 며칠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비행기에 앉아있는 것 같습니다."


오후 12시쯤 호텔에서 출발해서 밤 10시가 넘어서 내리는 스케줄에 하늘까지 우중충 하니, 대부분을 이런 우중충한 하늘 아래 살며 이슬비 정도는 우산 없이 맞고 다니는 영국 사람들의 애환이 이해가 되려는 찰나 어느새 김포공항이 코앞이다.


"저기 앞에 봐봐요."


기장님의 말씀에 앞에 창문 너머 보니 빨주노초파남보라색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무지개가 보인다.


영국인들의 마음이 이해가는 우중충한 하늘


"와 기장님, 진짜 예쁜데요?"

"이따 내려서 사진 찍자."

"그래야겠어요."


김포공항에 뇌우 경보가 있다고 했었는데 뇌우는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어여쁜 무지개가 반겨주고 있다니,


왠지 2박 3일 비행을 하며 쌓인 피로가 싸아~~~악







날아갈 줄 알았는데

일단 이쁜 건 이쁜 거고

피곤한 건 피곤한 게 맞는 것 같다.


이것이 직장인의 맛인가.


그래도 이런 풍경을 보며 일 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내가 내 직업이 좋은 수많은 이유 중, 이런 풍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다음 생애에 만약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같은 직업을 하고 싶을정도로 말이다.


아니면 아싸리 독수리 같은 것도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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