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퀵턴(quick turn)이 있다.
말 그대로 외국을 빠르게 휙 다녀오는 일.
승객의 입장에서는 외국을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타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려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비행기에서 일을 하는 승무원의 입장에서는 매번 그렇게 승객들과 같이 나가서 해외에 체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거리가 있는 지역을 가면 체류를 하기도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 혹은 국내선같이 한 레그(노선)가 짧은 구간에서는 하루 동안 여러 번 그 구간을 왔다 갔다 하며 비행을 한다.
다시 말해, 목적 공항에 도착하여 승객들의 하기가 끝나면 비행기에 남아 있는 승무원들은 다음 비행을 위해 바로 비행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그다음 공항을 가기 위해 비행기 컴퓨터에 정보 입력을 포함한 내부 점검을, 기장님께서는 그 전 비행에 외부 충격이나 파손 등의 상처가 없는지 검사를 위한 외부 점검과 정비사님, 사무장님과의 정보 교류를 통해 전체적으로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그리고 객실 승무원분들께서는 객실 보안점검을 포함해 다음 비행의 준비를 한다. 모두가 비행준비를 마치면 기장님께서는 다음 승객을 보딩 시켜도 좋다는 사인을 사무장님께 드리고, 사무장님께서는 공항의 지상직원과 이야기를 통해 보딩 사인을 준다. 그럼 다음 비행의 승객분들의 탑승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국내선 같은 경우에는 이런 식의 근무가 5번 정도 연속될 때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동남아시아나 괌을 가더라도 그곳에서 레이오버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고, 레이오버를 하는 나라들 또한 모두 퀵턴 비행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괌을 간다고 해보자. 편도만 5시간 30분 정도 나오는 비행을 쉬지 않고 왕복하려면 순수 비행시간만 11시간이 걸리고, 그 이외에 비행을 준비하고 승객분들을 하기 시키는 등 잡다한 업무를 포함하면 근무시간이 1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다. 코로나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라도 조종사들과 승무원분들의 피로도 관리 및 법적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 등의 이유 때문에 일정 시간 이상 연속 근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는 해외 퀵턴을 다녀올 때는 2개의 조가 투입된다. 기장님 두 분, 부기장 두 명.
첫 번째 기장님과 부기장님을 A 조라고 해보자.
A조는 한국에서 외국으로 가는 승객분들을 태우고 이륙을 하고 외국에서 착륙을 하여 외국 공항에서 승객분들을 하기시킨다. 그리하면 A조의 업무는 끝난다.
A조 기장님, 부기장님께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동안 B조에 속한 기장님과 부기장님은 승객석에서 조종사가 아닌 척 견장도 떼고 외투를 입는 등 위장을 하며 첩보활동을
아니 아니,
위장신분으로 푹 쉰다.
A조의 업무가 끝나면 B조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입었던 외투를 벗어던지고 견장을 주섬주섬 달고 사원증을 매고 조종사로 다시 변장한 뒤 비행 가방을 들고 칵핏으로 향한다. 이제는 B조가 비행기를 끌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차례이다.
이것이 요즘 하는 2 set 퀵턴이다.
얼마 전, 이러한 2 set으로 필리핀 클락 퀵턴을 다녀오는 비행이 있었다.
오랜만에 인천공항으로 출근을 했는데, 여행 가는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공항이 휑하다.
'이놈의 코로나 언제 끝날까...'
조금은 무거워진 마음으로 브리핑실로 향했다.
새벽 4시 50분쯤이었고, 브리핑실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대충 브리핑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갔으니 아무도 없을 수밖에.
나는 B조. 즉 갈 때는 위장신분으로 승객석에서 쉬다가 클락에서 올 때 조종사로 변장해서 근무하는 조였다.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내리고 비행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서류를 뽑고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브리핑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A조의 부기장님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A조 기장님이 들어오셨고 나와 같이 근무하시는 B조 기장님까지 곧이어 들어오셨다.
나와 같이 근무하시는 B조 기장님은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A조 기장님은 어디서 많이 뵌 느낌이다. 기억을 되뇌어보니, 2년 전쯤 내가 훈련생 시절에 뵀던 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훈련생 신분으로 내가 기장님 비행기를 탔었다.
작은 경비행기만 몰다가 737 같은 큰 비행기를 바로 조종을 할 수는 없기에, 회사에서는 약 1년 반의 기간을 들여 정해진 커리큘럼과 프로그램 안에서 조종사를 교육한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나는 '훈련생'의 자격으로 회사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교육 중간, 훈련생이 737 비행기 칵핏 뒷좌석에 앉아 전체적인 절차를 관찰할 수 있게끔 하는 관숙비행을 하게 해 주는데, 그때 내가 관숙비행으로 들어갔던 비행기에서 근무하셨던 기장님이었다.
비록 스쳐간 시간은 총 비행시간이었던 3시간도 채 안됐지만, 그 짧은 사이에 그분께서 나에게 감사한 분으로 남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날 관숙비행이 끝나고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737 처음 타는 거예요?”
“네 기장님! 맞습니다!”
“비행기랑 사진 한 번도 같이 찍은 적이 없겠네?”
“그.. 그런 거 같습니다!!”
“저기 서봐요. 조종사가 비행기 앞에서 찍은 사진은 하나 있어야지.”
너무 찍고 싶었지만,
“괜찮습니다!!!”
“나중에 부기장 되면 이럴 기회도 없어. 훈련생 때 찍어야지.”
부기장 나부랭이보다 더 나부랭이였던 훈련생 나부랭이였던 나는, 비행기 앞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그때는 괜히 민망하고 남사스러웠는데 지금 와서 그 사진을 보면 결국 나에게 너무 소중한 추억으로 되어버렸다. 정말 기장님 말씀대로 부기장이 되고 나서 보니 비행기 앞에서 사진을 찍을 생각 하기는커녕 비행 끝나면 퇴근하기 바쁜 현실 직장인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때 그렇게 먼저 배려를 해주셨던 기장님에게 언젠가 내가 부기장이 되어 다시 뵙게 되면, 꼭 감사인사를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분이 내 앞에 계시다니.
너무 반가워서 아는 척하려고 다가가려 하던 찰나 이미 그것도 벌써 2년도 지난 일, 나를 알아보실 일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교 동기들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는 사람이 태반인데, 고작 3시간 스친 훈련생 얼굴을 기억이나 하실까.
우리는 그렇게 출발했고 나는 클락을 가는 내내 승객석에 앉아 고민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참 고마운 분인데 꼭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게다가 매번 다른 기장님과 비행을 하는 나의 일 특성상 자주 마주치기 쉬운 일도 아니다. 다음에 뵀을 때는 그게 1년 후일 수도 있고 5년 후일 수도 있다.
그냥 가서 바로 "기장님 캄솸다!!!" 해버릴까?
아니다. 이건 분명 기장님이 나를 피하기에 딱 좋은 행동이다.
그렇다면 스윽 옆에 가서, "기장님 ㅎㅎ.. 저 기억 안 나십니까?" 해볼까?
아니다. 이건 좀 많이 변태 같다.
사실 그냥 가서 정중하고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되는 일인데, 그게 나만 기억하고 있는 일이라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괜히 기장님에게 친한 척하는 것 같아 부담드리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났을 때쯤 우리 비행기는 클락 공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내가 투입될 차례이다.
A조 기장님과 부기장님께서 근무를 마치시고 나왔고, 나는 다음 비행을 위해 칵핏으로 들어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승객분들의 보딩 시간까지는 여유가 조금 있어서 비행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준비
그때,
A조 기장님,
다시 말해 나한테 너무 감사한 기장님,
A.K.A 내가 친한척하고 싶은 기장님,
다른 말로는 내가 너무 고마운 마음을 가진 그 기장님께서 내 어깨를 툭 치신다.
"나 혹시 기억 안 나요?"
유명 연예인의 팬이 그 연예인에게 아는 척을 받았을 때 소리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종종 TV에 잡히던데
그 팬의 기분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울컥거림을 간신히 삼키고 대답했다.
"기장님. 당연히 기억납니다. 제 첫 737 비행기의 기장님이셨어요."
"그래 맞아 맞아."
"완전 쭈구리 때 찍어주신 사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이 뭘, 부기장 클리어 나고는 한 번도 외국에서 체류 못해봤겠네요?"
"코로나 때문에.. 덕분에 국내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아쉽겠다. 해외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해야 하는데."
기장님과 얘기하는데 괜히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만 같았는데 뭔가 진짜 얘 이상한 부기장 아니야 하실까 봐 간신히 참고, 기장님에게 기장님과 비행하면 국내선 200시간도 더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회생활 만렙이 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 생각하실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기장님. 요즘 같을 때 비행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걸요."
"그렇지, 맞아요."
아주 잠깐 스쳐갔던 사람이라도, 아주 작은 것에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되어 있으면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있을 때가 많다. 설령 당사자는 잘 모르더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좋고,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조금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