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 되지 않는
A인지 B인지 헷갈릴 경우엔, 대부분 A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한한 세상에서 확신 따위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둘의 머리 위에는 전선을 휘감은 줄이 드리워져 옆에서 보면 정삼각형 형태를 가진 전등갓을 지탱하고 있다. 불빛은 60도의 품으로 당신의 입과 나의 턱까지를 자신 안에 함께 끌어안는다. 당신은 마치 듀언 마이클이 찍은 마르셀 뒤샹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리 줘봐~!
라고 당신이 말하는 순간 나는, 확신 따위를 했다. 콘탁스를 당신 손에 건넸다. 당신의 눈은, 그리고 카메라의 렌즈는 나를 정조준했다. 당신은 긴 검지로 내 콘탁스의 셔터를 눌러버렸다. - 그리고는 영원히 그 순간을 놓쳐 버릴 것이다.
찍어준 사람은 기억이나 할까?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진은 이미 열화 되기 시작했다. 디지털은 열화 되지 않는다고들 하니 기억이 열화 된 것일까. 사진은 내 모습도 네 모습도 담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나는 너를 떠올리지만, 너는 나를 떠올리지 못하는 사태를 불러온다. 그때가 1996년인지 1997년 인지도 헷갈리고...
애매한 암담함이 찾아온다. 며칠 동안, 한 장의 사진이 무슨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남았다. 꿈의 계시처럼. 환상의 복선처럼.
몸처럼 만들어진 내 정신이 곧 ‘내 생각’이다. 기억은 무섭고, 사진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방향으로 들추어낸다. 부디 찍히지 말고 찍으라. 정지된 모습은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죽은 나를 바라보는 순간을 경험한다. 사진은 끈질기다. 영원토록 과거의 죽음을 환기한다. 죽음의 순간이 그리워진다. 빨간 테이블, 그때 흐르던 존 레넌의 노래, 네 미소, 너의 뒷모습, 그 공간에 이르게 했던 몇 개인지 모를 문의 손잡이들... 사람을 찍지 말고 대상을 찍으라. 존 레넌을 담지 말고, 그의 생각을... 찍힌 내가 없어진 것처럼 찍어준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싶어.
이것저것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닦고 분류하고 버리고 정리하다 보니 오늘도 세 시가 넘어있다. 베란다 밖으로부터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밤의 바람은 형체가 없어서 좋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다. 전체적으로는 좋다. 체온을 살며시 내려주는 느낌... 1700년대 과르네리의 뒷맛 같기도 하다.
어떤 사진 한 장이 그렇게 남았다.